'휴식과 충전의 공간'에 해당되는 글 2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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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선거를 바라보는 협동사회경제단체 대표자 선언문
201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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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경제지주 접목의 과제
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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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추진 바람 솔솔
201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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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개혁 목적 달성을 위한 제언
201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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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이 비영리조직인 4가지 이유
201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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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의 미래 가치, ‘소유권의 자발적 절제’
201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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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특집기사)농업선진국 뉴질랜드의 농업협동조합 소개 기사
201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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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하는 협동조합
201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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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뉴-농협 원년으로
201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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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개혁 건망증
201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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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안정을 위한 정부의 역할과 협동조합의 역할
201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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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의지 있나
201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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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자본금 배정, 경제사업이 우선
201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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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OP생협, 우리밀 소비에도 앞장
201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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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협동조합의 해, 본격적으로 준비하자
201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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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경제사업 활성화에 대한 동상이몽
201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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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분리의 수레바퀴는 돌아가지만
201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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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을 가다 ③문제점과 발전방안
201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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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협동조합의 날 기념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201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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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을 가다 ②iCOOP 생협 박석원 생산자 조합원
201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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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농민조합원 교육을 위한 세 가지 방법
201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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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20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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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관련 주요 인사 활동 기록 남긴다...협동조합연구소, 구술채록 진행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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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이후 농협경제의 중장기 계획은 있는가? 1
201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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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 선거, 다시 무더기 소송 자초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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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를 농정에 접목하자
201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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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농협개혁이 주는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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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의 역할, 깊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201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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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은 협동조합이 아니다? - 사회적경제 주체로서 농협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
2014/05/02
제대로 된 농민조합원 교육을 위한 세 가지 방법
2019/08/29 09:0630인 이상 참여시 자유로운 교육 지원
출마조건으로 교육이력제 도입을
며칠 전 농협안성교육원에 강의를 다녀왔다. 농민조합원 교육을 담당할 농협직원의 강사역량을 높이기 위한 교육이라고 했다. 2주 동안 진행되는 교육은 ‘조합원과 대의원의 역할’, ‘협동조합사업의 성공원칙’, ‘농협법 이해’, ‘협동조합 역사와 이념’ 등 강의내용에 대한 교육과 함께, ‘강의교안 작성법’, ‘파워포인트 작성법’, ‘강의기법’ 등 강의 스킬과 관련된 교육도 함께 있어 상당히 잘 짜여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협 직원이 조합원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역량을 가지도록 교육을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반가운 일이다. 좋은 강사 직원들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직원의 강의역량만 높아진다고 ‘농민조합원의 교육’이 제대로 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농민조합원 교육과 관련된 전체적인 시스템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농민조합원 교육은 또 다시 한 때의 공염불로 그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농협법에는 아예 별도의 조를 나눠서 조합원교육을 할 것을 의무사항으로 두고 있다. 농협법 제60조(조합원의 교육)은 다음과 같은 3개의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① 지역농협은 조합원에게 협동조합의 운영원칙과 방법에 관한 교육을 하여야 한다. ② 지역농협은 조합원의 권익이 증진될 수 있도록 조합원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품목별 전문기술교육과 경영상담 등을 하여야 한다. ③ 지역농협은 제2항에 따른 교육과 상담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주요 품목별로 전문 상담원을 둘 수 있다.
제3항은 제2항을 실행하기 위해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한 것인데 반해, 막상 제1항으로 제시한 “협동조합의 운영원칙과 방법에 관한 교육”은 구체적인 지침이 없는 실정이다. 사실 활발하게 진행된 영농교육과 달리 협동조합의 운영원칙과 방법에 대한 교육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그동안 만났던 조합장들의 다수는 “신규 조합원 교육을 시키려고 해도, 신규 조합원이 교육에 나오지를 않는다”는 어려움을 말하기도 했다. 반면에 어떤 농협의 이사가 농협 내에서 대의원을 포함한 조합원 교육을 하고 싶었는데, 강사를 정하는 문제로 농협과 이견이 생겨 결국 1년 반이나 지나서 대의원들이 원하는 강사를 모셔 어렵게 교육을 했다고 한다. 농민조합원 교육을 둘러싼 인식과 경험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왜 신규조합원들이 교육을 받으러 오지 않는 걸까? 조합원들 중에 교육을 받고 싶는 사람들은 아예 없을까? 공급자 중심으로만 농민조합원 교육을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농협이 선호하는 강사와 농민조합원들의 선호하는 강사가 다르면 강의를 함께 하거나 두 번에 나눠서 하면 안될까? 이런 질문들의 해결책을 찾아갈 때 농민조합원 교육이 체계화될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농민조합원 교육을 둘러싸고 많이 논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대로 된 농민조합원을 위한 강의를 하기 위한 방법을 몇 가지 제안한다.
첫째, 신규 조합원의 가입요건에 ‘협동조합 및 농협의 이해 강의’를 의무화해야 한다. 만약 참석이 어려우면 농협에 와서 강의 동영상을 보고, 소감문을 제출하거나 강의를 이해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시험을 치면 될 것이다. 생협은 이런 시스템을 이미 십여년 전부터 만들어 놓고 있다.
둘째, 농민조합원의 강의참석 희망자가 30명 이상이 되면 협동조합 교육을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농협이 지원하는 것을 의무화하도록 해야 한다. 성인교육의 특징을 감안할 때 스스로 기획하고 스스로 듣는 교육만큼 효과적인 교육이 없다.
셋째, 대의원, 이감사, 조합장의 출마조건으로 교육이력제를 도입하거나, 특정하게 정한 교육을 수료해야 하도록 농협법을 개정해야 한다. 평균 자산 1000억원에 달하는 농협의 운영에 대한 중차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농협의 지도자들이 어느 정도의 농협 이해도 없이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떤 농민조합원들이 협동조합의 운영원칙과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할까? 나아가 그 농협의 운영의 질적 수준이 어떨까?
협동조합은 교육에서 시작해서 교육으로 끝난다고 한다. 협동조합지도자가 가장 큰 의무는 후계지도자를 육성하는 것이라는 금언도 있다. 농민조합원에 대한 농협의 교육이 제대로 되고, 체계화되길 간절하게 기원한다.
김기태 /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농협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2019/08/28 21:47지켜지지 않는 강제규정 많아
농협중앙회 통렬한 반성 필요
두 달 전에 쓴 “제대로 된 농민조합원 교육을 위한 3가지 방법”을 읽은 여러 분들이 연락을 주셔서 “농협법에 협동조합 운영원칙과 방법에 관한 교육을 하여야 한다는 강제규정이 있다는 말이 진짜냐?”며 놀라워하고, 그동안 농협에서 그런 강제규정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에 분개했다. 더구나 농협을 감독해야 할 농림축산식품부는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왜 농협에 수십 년간 주의를 주지 않았는지 의아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조항이 한 두 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농협법에서 일반적으로 수행되는 강제규정은 빼고,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강제규정에 대해 몇 가지 더 찾아보자.
농협법 제10조(다른 협동조합 등과의 협력)에는 “(농협조직들은 농협의 다른 조직들-인용자), 다른 법률에 따른 협동조합 및 외국의 협동조합과의 상호협력, 이해증진 및 공동사업 개발 등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얼마 전 사회적경제를 대표하는 한 분이 “농협중앙회와 몇 차례 만났는데 뭘 이야기하고, 뭘 결정했는지, 뭐가 진행될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며 소회를 밝혀 왔다. 쉽게 말하면 고구마 먹은 것 같다는 것이다. 영농조합법인도 경합이라고 걸고 있는 농협에 다른 협동조합 등과의 협력은 언감생심이다.
제24조(조합원의 책임)이 제2항에는 “조합원은 지역농협의 운영과정에 성실히 참여하여야 하며,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농협을 통하여 출하(出荷)하는 등 그 사업을 성실히 이용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고, 이를 2년 동안 이행하지 않으면 제명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2015년 농협에서 정리한 바에 따르면 조합원의 74%가 1년 동안 단 1원도 판매 사업을 이용하지 않았다. 농사를 짓지 않는 조합원의 제명 문제는 이미 여러 번 나온 이야기니 여기서는 줄이자.
제24조의2(조합원의 우대)에는 약정조합원을 우대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제3항에는 “지역농협은 약정조합원 육성계획을 매년 수립하여 시행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900개에 이르는 지역농협 중 약정조합원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농협은 개인적으로 3~4개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머지는 명백하게 농협법을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지역농협에 대한 강제규정 중 제대로 수행되지 않고 있는 것만 위에서 모아 보았다. 중앙회나 연합회, 조합공동사업법인 등도 이런 방식으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농림수산성은 아베 정부의 ‘농협사업 위축’이란 기조 속에서 농협에 대한 지원은커녕 오히려 농협이 농협법을 위반하는 사항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고 있다. 아베 정부의 반농협적 정책은 규탄 받아 마땅하지만, 굳이 한 가지 배울 것이 있다면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강제규정은 더욱 그렇다.
강제규정은 주로 법논리적으로 볼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항이나 기존의 농협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농협법 개정에서 강력한 요구에 따라 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강제규정을 만들어 놓고도 거의 이행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은 행정부와 농협이 농민조합원의 강력한 요구가 만들어낸 국민적 합의를 이행하는 데 고의적으로 해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농식품부는 농협에 대한 지도감사기능을 농협중앙회에게 이관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이런 심각한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책임의 대부분은 농협중앙회에게 있다. 농협중앙회의 통렬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농식품부도 지도감사 기능을 농협중앙회에게 이관해 주고 있는데도 이런 기본적인 것을 잡지 못한다면, 지도감사기능의 이관에 제어를 하거나, 강력한 경고를 줄 필요가 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김기태 /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협동조합 관련 주요 인사 활동 기록 남긴다...협동조합연구소, 구술채록 진행
2019/06/13 14:4211일 협동조합연구소에 따르면 이 사업은 행정안전부의 2019년 공익사업으로 선정돼 올해 4월부터 12월까지 협동조합지도자 구술 채록, 집담회, 토론회, 심포지엄 등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 활동을 통해 △공동체 가치 및 협동조합 의식을 함양하고 △협동조합운동의 발전방안을 모색하며, 구술·집담회·토론회 등을 통해 모은 1차 사료들은 역사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구술채록사업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선정한 한국협동조합운동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협동조합 지도자로 농업협동조합의 주요지도자, 농협개혁운동을 주도한 현장지도자, 농업제도 개선에 큰 영향을 끼친 연구자, 수산업협동조합, 신협 등 생생한 증인들의 구체적이고 다각적인 정보를 취합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구술채록사업 대상자는 윤익로(한국과수농업연합회 전임 회장), 배종렬(전국농민회총연맹 전임 의장), 이길재((사)통일농수산 상임대표), 송창기(가톨릭농민회 충북연합회 전임 회장), 서중일(상지대 명예교수), 김영철(건국대 명예교수) 등이다. 또한 정병호(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전임 소장), 한성찬((사)소비자생활협동조합중앙회 전임 회장), 정구선(밀알신용협동조합 전임 이사장), 이상호(신용협동조합 중앙회 전임 회장) 등도 채록할 계획이다.
구술자와의 심층면담을 통해 취합된 자료는 자료집으로 출간되며, 이는 향후 협동조합운동 연구의 기초자료로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협동조합연구소는 기대하고 있다.
‘신시대21’은 2009년 12월 설립된 행정안전부 산하의 비영리민간단체로, 한국의 각 분야 발전에 기여한 인사들에 대한 구술채록과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이다.
2020년 이후 농협경제의 중장기 계획은 있는가?
2019/03/19 20:29농협 경제사업 활성화 9개년 계획
2020년까지…평가는 부정적일 듯
남은 기간동안 농민과 약속 지켜야
“농협의 경제사업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는 의례적이거나 초보적인 질문이 아니다. 2020년이 다가올수록 농협의 경제사업 전체의 미래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다는 치열한 현실인식에서 나온 매우 구체적이고 무거운 질문이다.
2011년 3월 농협법이 개정되면서 17년간 농민단체가 주장해 왔던 농협 신경분리가 마침내 확정되었다. 경제, 교육지원 및 신용사업을 다 함께 하던 농협중앙회는 경제사업은 농협경제지주에 신용사업은 농협금융지주에 이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를 비롯한 농민단체의 적극적인 경제사업활성화 요구에 따라 원래 2조7000억원만 배정하려던 경제지주의 자본금을 정부가 지원을 해서라도 제대로 된 사업을 하도록 6조원 가량 배정하는 것으로 결정된 것이 2012년 말이었다. 경제지주와 농협중앙회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경제사업을 활성화시키겠다고 2012년부터 2020년까지 9개년의 장기계획을 수립하였고, 그 실행 결과에 대해 매년 농식품부와 전문가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농민 조합원과 농민단체가 그토록 열망했던 농협의 경제사업활성화는 잘 추진되고 있는가? 농식품부에서 발간한 “′17년 농협경제사업 성과평가” 자료에 따르면 농민조합원들에 대해 무작위로 추출하여 만족도를 묻는 설문 중 ‘농협경제사업의 개선도’와 ‘자재구매시 서비스 및 가격’에 대한 응답은 매년 조금씩 나아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반면, ‘농협중앙회 사업구조개편에 대한 인지도’는 부정적인 응답이 많았다.
회원조합의 조합장이나 경제상무 등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설문에서는 ‘농협 계통이용 실적 증가’는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그 외의 ‘경제사업 개선도 평가’나 ‘사업구조개편 정보 제공’, ‘중앙회 판매사업’, ‘중앙회와 조합간 협력정도’는 3개년 모두 5점척도 기준 평균 3.0을 밑도는 부정적인 의견이 계속되었다. 부정적 평가 와중에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원래 경제사업 활성화를 기대하며 사업구조개편을 치열하게 요구해 왔던 농민조합원과 농민단체의 기대수준에 비하면 여전히 미진하다고 할 수 있다.
벌써 2020년이 내년으로 다가왔다. 1년 9개월만 지나면 2011년 사업구조개편의 경제사업 활성화의 결과가 나오게 된다. 2020년의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농민조합원들이 피부로 느낄 만큼 농협의 경제사업이 좋아졌는지 아닌지의 여부이다. 또 다른 기준은 농축협의 임직원들이 농협경제지주를 믿고 함께 할 파트너이며, 사업적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하는지 여부이다.
아직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지만, 현재까지의 흐름을 볼 때 그렇게 긍정적인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농협은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두 가지 노력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남아 있는 기간 동안이라도 최선을 다해, 농민과 국회에서 약속한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한 약속을 최대한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9년 전의 계획 수립 시 예상치 못했던 변화가 있었다면 줄일 부분은 줄이고, 늘릴 부분은 늘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전술적인 방향조정을 속도감 있게 하여야 한다. 물론 그런 변화와 조정은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 만 해야 할 것이다.
둘째, 2020년 이후의 중장기 경제사업 계획을 범농협적으로 세워야 한다. 현장의 농민조합원, 농축협 임직원들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대규모적으로 청취하며, 변화된 여건에 대응하기 위한 진취적인 전략방향을 세워야 한다. 단순한 매출액 증대 계획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경제지주와 중앙회, 자회사의 구분 없이 모든 농협의 자산을 융합시키고, 빠른 의사결정과 우수한 인재가 경영책임을 맡을 수 있는 제도적 정비까지 포함하는 종합적인 전략이어야 할 것이다.
구조적인 농산물의 수급불안정이 빈발하고 있고, 농민조합원의 절반이 70살 이상으로 고령화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남아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범농협이 함께 실천할 의지가 있는 제대로 된 경제사업 중장기 계획을 만들 것인가 아닌가는 이런 촉박한 현실에서 농민조합원들의 농협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조합장 선거, 다시 무더기 소송 자초 않으려면
2018/10/23 10:17농지원부 없이 영농계획서만 제출 불구
여전히 조합원…대의원·이감사 맡기도
농축협 ‘무자격 조합원’ 정비 서둘러야
내년 3월이면 다시 농협 조합장 선거가 돌아온다. 농협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관리 요청을 하는 등 실무적인 준비는 이미 본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단순한 실무는 챙길지 모르지만 정말 필요한 점검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얼마 전 한 농민을 만났다. 농업경영인군연합회장을 지내고 농민회에서도 활동한 농민인데, S농협의 조합원 관련 자료를 한 무더기 가지고 왔다. 농협 조합원 가운데 상당수가 농사를 짓지 않고 있다는 증빙 서류였다.
지난번 조합장 선거가 끝난 후 농협법 상 조합원이 아닌 자들이 투표를 해서 선거결과가 뒤바뀌었다며 수 십 건의 소송이 진행되었다. 실제 한 축협에서는 법원에서 40%가 조합원 자격이 없다고 판정해 주기도 했다. 농민조합원들의 축제가 되어야 할 조합장 선거에 무자격조합원이 얽히면서 법정까지 문제를 끌고 가는 사태가 전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농식품부와 농협중앙회는 당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조합제도개선 TF를 운영하여 무자격 조합원의 정비를 철저하게 하기로 하였고, 중앙회는 지속적으로 일선의 농축협에 독려하고 있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정비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제 무자격조합원 문제로 농협의 운영민주화에 금이 가는 일은 없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그 농민이 들고 온 자료를 보니, 내가 너무 순진하고 안일했구나 자책하게 되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백명의 조합원들이 농지원부도 없어, “영농계획서” 달랑 1장짜리를 제출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심지어 2~3년 전에도 영농계획서만 제출하고 작년에도 영농계획서만 제출했는데도 여전히 조합원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런 농민들 중에 대의원도 있고, 이감사도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농협중앙회는 조합원 정비 관련 문서에서 영농계획서를 인정하면 안된다고 명토를 박아두고, 이런 경우에는 정비 대상이라고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일선 농축협에서는 중앙회의 공문마저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 백 명의 부실 무자격 조합원이 최소 3년 이상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농협법을 지켜야 할 조합장과 직원들이 불법 행위를 조직적으로 자행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문제에 대해 농협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 농식품부에 민원을 제기하니 농협중앙회로 이첩하고, 법적 소송을 걸어보니 심지어 법원에서도 판결을 미루고 있다며 안타까움과 분노를 토로하는 그 농민 앞에서 어떻게 해 줄 말이 없었다. 다른 농축협에서는 문제제기하는 농민조합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까지 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웃기면서도 슬픈 위로나 할 수 밖에 없었다.
4년전 선거에 비해 도시화는 더 진행되었고, 조합원들의 고령화는 더 심각해 졌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농협의 정조합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농협 정체성의 첫 걸음인데, 이런 기본조차 4년 전 선거에서 수십건의 선거 소송으로 망신을 당해 놓고, 아직도 제대로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농협의 정체성을 따지는 것도 이제 별 소용이 없어 보인다.
이번 국감에서 드러났듯이 농협에 대한 외부의 비판은 더 거세어 지고 있다. 이전에는 농협의 주인인 농민들이 모여 농협의 개혁을 주장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은 비판도 높아지고 있다. 농협중앙회장은 “국민과 함께 하는 국민농협”을 주창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농민들은 농협에서 더 멀어지고, 기대를 접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외부의 비판이 점차 거세어질 수밖에 없는 여건이다. 그렇다면 농협 내부에서 자체적인 개혁을 통해 약점을 줄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외부에서 들이대는 개혁의 칼날에 고스란히 몸을 맡겨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중앙회가 해결하겠다고 공언한 무자격조합원 정비도 현장에서는 허점투성이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떻게 자체적인 개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무더기 소송을 다시금 자초하지 않으려면 남은 2~3개월의 기간 동안 무자격 조합원 정비부터 철저하게 감독하고 단속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경제’를 농정에 접목하자
2018/08/21 10:43대규모 자본 중심 경제체제에서
낮은 수익성으로 고통 받는 농업·농촌
협동과 사회적 경제에서 답 찾아야
문재인대통령이 사회적경제를 몇 번 언급하고,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에서 사회적가치를 얼마나 실현했느냐에 100점 중 20점이나 배정하는 행정안전부의 평가편람이 발표되면서 현 정부에서 사회적경제는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사회적가치 전담 부서가 만들어지고, 현장의 사회적경제조직들에게 어떤 활동과 사업을 할지 묻고 다니고 있다. 공무원 교육을 연구하는 어떤 박사는 요즘 새롭게 만들어지는 공무원 교육프로그램에는 대부분 ‘사회적경제’와 ‘4차산업혁명’이란 말이 들어간다고 전했다.
그런데 그동안 오랫동안 장관과 농정비서관이 공석이어서 그랬는지 농식품부와 농업계에서는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다. 여러 사람들에게 들리는 바로는 청와대에서 주도하는 사회적경제 드라이브에서 농식품부는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농식품부도 이런 평가에 대해 억울하거나 서운할 수 있다. “협동조합의 맏형이라는 농협을 지도 감독하는 것만 해도 힘들다.” “사회적경제란 말이 나오기 전부터 영농조합법인, 농업회사법인, 들녘경영체, 농촌공동체회사 등 지금 보면 사회적경제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농촌사회에 대한 여러 정책이 모두 알고 보면 사회적경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애정어린 눈으로 보자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농민들의 눈이나 비농업계의 눈으로 본다면 이런 말들은 그렇게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에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라는 시구처럼 의미를 부여하여야 정체성이 만들어지는데, 그동안의 정책방향을 보면 이들 정책들을 사회적경제로서 의미부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폐쇄적인 공동체를 만드는데 기여하게 하였다.
영농조합법인 육성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회적경제라고 말하기 무색하다. 영농조합법인의 개인 투자한도는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아, 사실상 개인사업자로 전락한 경우가 많은데도 지도감독은 소홀했다. 법인을 운영하면서 민주적 역량을 키우는 것도 정책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일본의 집락영농을 벤치마킹한 들녘경영체도 마을공동사업 활성화라는 본래의 취지는 망각하고 단순한 쌀 산업 경쟁력 강화에 매몰되었다. 농촌공동체회사도 지원만 받고 뿔뿔이 흩어져 있다.
농협마저도 수십년간의 제도적 특혜에 힘입어 많은 자산과 체계적인 사업시스템을 가지게 되었으나 조합원을 중심에 놓은 민주적 운영을 한다고 하기 어렵다. 지도감독 기능을 가진 농식품부의 영향력도 갈수록 축소되는 듯해 보인다.
대규모 자본 중심의 경제체제에서 이윤을 창출하기 어려운 산업으로서의 농업과 공간으로서의 농촌은 금융업이나 도시와 정반대의 자리에 설 수 밖에 없어 소외되고, 낮은 수익성에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농업과 농촌은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언제나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가 가장 많이 꽃피는 공간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가장 규모가 큰 협동조합은 농업협동조합이고, 사회적경제가 지역을 살린 사례의 상당수는 농산어촌 지역이었다. 농업농촌에게 사회적경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것이고 익숙한 것이다. 계와 두례, 향약은 우리가 자랑스러워 할 전통적 협동조직이며, 농민들은 언제나 함께 살 길을 찾아왔다.
지난 두 정부의 농업정책은 외부의 자본을 유치하여 농업을 살리겠다는 데 초점을 맞춘 면이 없지 않았다. 자본금이 1000억원인 농업회사법인의 경우, 농업인들이 8억만 출자하면 99.2%의 지분을 재벌이 가지고 있어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친 것만 보더라도 기존 농정의 지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재벌과 멀리 있어야 하는 농업정책이 오히려 재벌이 농업에 침투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으로 작동한 아이러니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농민이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농업관련 정책과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다행히 농식품부는 사회적농업 정책을 도입하여 농정패러다임의 변화에 첫 발을 내 디뎠다. 하지만 사회적농업 정책을 사회적경제 활성화의 면피로 삼으면 안 된다.
협동과 사회적경제가 우리 농업농촌의 오래된 전통이듯이, 앞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철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농정패러다임을 변화시켜야 한다. 긴 공백 후 임명된 이개호 장관의 농정철학의 시금석은 결국 농업정책과 사회적경제를 얼마나 조화시켜 내는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일본의 농협개혁이 주는 시사점
2017/09/07 13:19우리와 같이 농촌 지역에서 농업인의 경제활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일본은 고령화 등으로 정조합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반면, 준조합원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4년 일본농협의 정조합원 수는 약 450만명인데 반해 준조합원 수는 약 580만명에 이른다.
강력한 정부주도 제도개혁
일본은 아베정부 출범 이후 강력한 정부주도의 농협 제도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개혁의 주요 골자는 주식회사 등을 포함한 직능 조직으로의 전환, 금융사업 분리, 준조합원 이용제한 등이다. 일본 농협개혁의 표면적 이유는 농업인의 이익실현을 위한 경제사업의 경쟁력 강화이며, 수익성이 악화되는 지역 농협 신용사업의 현 또는 전국연합조직의 대리점화이다.
특히 경제사업 측면에서는 영세농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농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농업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의도가 크다. 대표적인 조치가 지역 농협 이사의 과반 수 이상을 원칙적으로 인정농업인과 농산물판매 등의 프로로 할 것을 요구하는 “책임 있는 경영체제”의 규정이며, 지역 농협조직의 일부를 주식회사나 생협 등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신용사업 측면에서는 지역 농협의 신용사업 부문을 연합조직으로 이관하는 것과 준조합원의 이용을 제한하는 것이다. 일본의 지역 농협의 예금 수신고는 2015년 기준 95조엔이며, 이중 54%에 해당하는 51조엔을 전국연합조직인 농림중앙금고가 운용하고 있으며, 현 단위의 신용연합조직인 현 신용연합회가 약 19%인 18조엔을 운용하고 있다. 지역 농협이 운영하는 예금은 27%에 해당하는 26조엔에 불과하다. 특히 신용사업의 수익성 악화는 지역 농협과 연합회조직 모두가 직면한 과제이다. 이로 인해 일본정부는 지역 농협의 신용사업 부분을 농림중앙금고나 현 신용연합회의 대리점으로 재편하려 하고 있다.
한편 민간 금융기관에서도 농협 신용사업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민간 금융기관에서는 심각한 경영난에 직면하게 되면서 준조합원 수가 정조합원 수를 웃도는 농협에 세제상 우대조치나 독점금지법 적용예외 등 각종 혜택을 주는 것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농협의 준조합원의 사업이용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일본의 농협 조직이 운용하는 총 금융자산 중 농업분야의 대출잔액은 1.9조엔으로 1.2%에 불과하다. 이것이 농업인을 위한 농협의 역할이 부진하다는 비판을 받는 근거가 되고 있다.
준조합원 이용제한 등 추진
일본 농협의 특징은 경제, 신용, 공제사업을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종합농협체제라는 점이다. 종합농협은 수익성이 높은 사업 부문을 통해 수익성이 약한 사업 부문을 보완해 종합사업의 상승효과를 추구하는 데 있다. 가령 대표적인 적자사업 부문인 영농지도사업을 강화하면 농산물 판매금액이 늘어나고, 늘어난 판매금액은 다시 저금액 증가, 공제사업규모 확대, 구매사업규모의 확대로 이어져 농협의 수익을 확보해 주며 이러한 수익확보가 영농지도사업을 더욱 더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지역 농협의 3대 사업 부문(경제, 신용, 공제)의 평균 손익은 경제 2억엔 적자, 신용 3.8억엔 흑자, 공제 2억엔 흑자이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경제사업 부문에 좀 더 많은 인적자원을 배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현재 일본 농협의 경제사업 부분의 인력은 평균 15% 수준이다. 그러나 경제사업에 인력을 확충하면 신용과 공제사업의 실적하락이 예상되며, 이러한 실적하락의 수혜자는 민간의 금융기관과 보험회사의 진입을 촉진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종합농협으로서의 특징을 갖는 지역 농협의 해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농업인에 이점 제공이 중요
이상과 같은 일본정부의 농협 개혁대책은 결국 효율성을 중시한 지역 농협의 전문 농협화로 판단된다. 특히 경제사업 부문에서도 영세소농의 조합원에 대한 서비스 중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농협개혁은 결국 경제적인 약자가 민주적인 운영과 협동을 통해 강자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하고, 종합성이라는 사업 부문 간의 상승효과를 추구하는 협동조합의 우위성을 파괴할 가능성도 크다. 또한 농협 조직은 정조합원 수의 지속적인 감소와 다양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농업 이외에 농촌 지역의 생활측면에서 농협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효율성 있는 농협경영을 통해 조합원인 농업인에게 보다 많은 이점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효율성이 영세소농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의 도구로 이용되어도 안 될 것이다. 동시에 점차 다양화되고 있는 현 상황 속에서 농협의 새로운 역할을 어떻게 제시하고 실현할 것인지 자기개혁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위태석 / 농촌진흥청 연구사
농민조합원의 실익에 도움이 되는 농협법 개정인가?
2016/06/01 10:29이번 농협법 개정의 역사적 의의는 농협조합장 직선제 전환 이후 1994년부터 지속된 농협개혁의 핵심 요구 였던 농협중앙회 신용사업-경제사업 분리를 경제사업 완전이관을 계기로 제도적으로 완결짓는 개정이라는 점이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쟁점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경제관련 사업의 완전이관에 따른 중앙회 업무 및 권한의 조정, 둘째 중앙회장 호선제 도입, 셋째, 축경특례의 폐지, 넷째, 일선조합 조합원 정예화 및 임원 판매사업 의무화가 그것이다. 농협법 개정안의 체계 내에서는 이들 4대 핵심 쟁점은 상호연결되어 있어 제도적 완성도는 높다고 하겠다. 어떤 제도든 그 제도가 정당하다고 평가받으려면 최종 고객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농협법의 최종 고객은 2백여만명의 농민조합원과 5천만 소비자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번 개정안을 포함하여 농협법 전체가 농민조합원에게 생산비를 보장하는 등의 실익을 제공하고, 농협 제도 전체를 통해 유통마진을 줄이고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켜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농협법 개정안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첫째, 농민조합원에게 도움이 되는 경제사업 완전이관에 기여하는가? 둘째, 농민조합원이 중심이 되는 협동조합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했는가? 라는 두가지 관점에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우선 일선조합 조합원의 자격기준으로 경제사업 이용을 명문화하고, 조합 임원에 대해서는 특히 판매사업의 이용을 의무화하는 법개정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경제사업을 이용하지 않은 조합원이 45만명이나 되고, 판매사업을 이용하지 않는 조합원은 170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농협이 농업생산자협동조합이라는 핵심적인 정체성에 비춰볼 때 아쉬운 부분이다. 바람직한 법개정 방향임을 전제한 상황에서 농협이 그동안 종합농협체계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경제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에 대한 세부적인 대책도 강구될 필요가 있다. 경제사업 완전 이관을 위한 제도정비도 기대 이상이다. 나는 이전부터 경제사업 완전 이관의 핵심과제로 1)농민조합원 조직을 통한 농기자재구매부터 소비지유통까지의 협동조합적 계열화 사업체계의 확립, 2)중앙회가 시행하는 정책사업과 경제관련 지원사업 가운데 경제지주 이관 범위의 확정 및 그에 따른 경제지주와 중앙회의 역할 재정립, 3)계열화체계에 따른 농민조합원, 일선조합, 경제지주 및 자회사와 중앙회의 수익배분 모델의 개발로 정리했다. 이번 농협법 개정에는 우선 정책사업과 경제관련 지원사업이 전반적으로 경제지주로 이관되는 것으로 방향이 잡혀 있다. 경제관련 정책사업과 지원사업을 위한 예산편성권이 경제지주로 넘어옴에 따라 중앙회의 권한은 대폭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계열화 사업체계의 확립과 수익배분 방식의 결정은 농협법의 소관사항이 아니므로 앞으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최근 농식품 시장 상황은 대형유통업체와 SSM의 성장이 둔화되는 가운데 재벌그룹이 주도하는 식자재 시장과 온라인 거래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식자재시장의 확대는 FTA 이후 늘어나고 있는 수입농산물의 중간기착지로 쉽게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농식품 위주 식자재 시장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식자재 시장이나 온라인, 홈쇼핑 시장의 특징은 농산물과 축산물, 수산물이 통합적으로 구매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농업경제와 축산경제의 전략적인 결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농협경제사업활성화 전체가 성공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농협경제지주의 사령탑을 투톱으로 가져가는 것은 지난 5년간의 경험을 평가해 볼 때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런 점에서 축산경제특례를 법에서 삭제하고, 사업적 관점에 따라 농협 자체적으로 판단하도록 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농민조합원이 정예화되고, 판매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이 일선조합 임원을 할 수 없도록 정비한 농협법 개정안은 일선조합 내에서 발생하는 대리인문제를 완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이번 법개정을 통해 많은 권한을 가지게 되는 농협경제지주 회장에 대한 견제력을 갖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최근 조선해양산업의 부실화와 함께 대기업 구조조정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NH금융지주의 향후 방향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자칫 구조조정 과정에서 NH금융지주의 부담이 NH금융지주의 현재 자본금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되면 중앙회의 역할은 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상호금융의 활성화에 대한 장기적인 방향의 검토가 농업계 전체의 관심 속에서 심도깊게 논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내년 2월말까지 개정된 농협법이 시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여 결론을 맺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2020년 농협의 경제사업활성화 계획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새롭게 제기된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를 할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결과에 따라 농협법을 재개정한다라는 향후 일정을 부칙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농협법은 워낙 많은 쟁점이 얽히고 섥혀 있어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해도 농민조합원에게 실익을 주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평가기준을 가지고 차분하게 파악해 나간다면 지혜로운 결론을 함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김기태 소장
농협중앙회장 당선자 공약 다시보기
2016/02/03 09:53김병원 당선자는 조합장, 중앙회 이사, 농협자회사 사장 등을 역임한 경력을 십분 활용하여 다른 후보와는 달리 사업별 공약을 제시할 정도로 중앙회와 농축협에 대한 이해가 높다. 전략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앞으로의 농협중앙회로서는 가장 최적의 인물을 선출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농협의 변화가능성에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된다.
경제지주 없애면 경합문제 해소?
일반적으로 당선자에게 건네는 대표적인 주문은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라”이다. 하지만 김 당선자의 공약 가운데 농협경제지주를 해체하고, 농협무이자자금을 10조원에서 20조원으로 늘리겠다는 약속에 대해서는 반대로 다시 한 번 신중하게 검토할 것을 권하고 싶다.
사실 농협경제지주에 대한 재검토는 대다수 후보들의 공약이기도 했다. 그 이유로는 농협경제지주가 일선조합의 사업과 경합관계에 놓일 것이라는 조합장들의 불만과 불안이 광범위하게 퍼졌기 때문이다. 실제 농협중앙회는 그동안 농협경제지주와 자회사에 대해 명칭사용료와 배당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조합장들의 불안에는 나름 현실적 이유가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농협경제사업이 사업구조개편 전에 700억원 정도의 적자를 보이다가 현재는 600억원 정도 흑자를 내고 있어 잠깐 볼 때는 농협경제지주가 출범한 후 수익을 많이 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사업구조개편 이전에는 경제사업 부문이 2조원이 넘는 돈에 대한 이자를 물어야 했지만, 지금은 6조원의 배정된 자본이 있어 오히려 이자수입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회사로 분리되면서 점차 사업체로서의 DNA를 회복하고 있고, 직원의 채용에서도 급여 수준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니 불필요하게 과도한 오해나 불안감을 가지기보다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면서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농협경제지주를 해체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찍힌다. 농협사업구조개편 이전에도 많은 조합장들이 중앙회와 일선조합의 사업이 서로 경쟁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현장의 조합장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가장 큰 불만은 농협보험의 부당한 수수료 체계와 상호금융 예치금리의 하락에 닿아 있다. 신용사업과 관련된 불만이 경제사업에 불똥을 튀기는 점이 없는지도 따져 봐야 한다.
무이자자금 2배로 확대도 걱정
협동조합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사업을 이용하는 조합원이 의사결정에 더 밀접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더 많은 혜택과 배당이 돌아갈 수 있도록 사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협동조합적 사업구조가 만들어지면 지주회사냐 중앙회냐의 법인격의 다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무이자자금을 10조원에서 20조원으로 늘리려는 공약이다. 농협의 무이자자금은 내부유보자금을 제외하면 농협중앙회가 빚을 내어 일선조합에 나눠주거나, 교육지원사업비를 늘리고 이를 이자율로 나눠 무이자자금 규모를 늘리는 방법 뿐이다. 20조원으로 늘리려면 빚을 10조원 더 내든지, 2%로 이자를 계산할 때 매년 일선조합에 나눠주는 교육지원사업비를 200억원 정도 더 늘려야 한다. 전자는 농협중앙회를 빚쟁이로 만들고, 후자는 금융지주나 경제지주에서 더 많은 배당이나 명칭사용료를 받아내야 한다. 전자는 결국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일선조합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되고, 후자는 일선조합의 운영을 직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무이자자금을 늘릴수록 경제지주와 금융지주는 일선조합과의 경쟁으로 내몰리게 되고, 결국 중앙회 및 지주회사 관련 사업에서 일선조합의 부담은 간접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아랫돌을 빼어서 윗돌을 괴는 격이다.
농협중앙회가 협동조합의 연합회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중앙회장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조합장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일선조합의 운영상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중앙회를 자꾸 쳐다보면 안된다. 협동조합은 자조와 자립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보조를 바라기보다 사업체계의 정비, 효과성을 높이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직원의 협동조합 운동가라는 태도와 자세를 높이면서 전문성을 키우고, 사업시스템을 효과적으로 정비하는 조직혁신을 중앙회, 경제지주, 일선조합이 모두 함께 해야 한다. 불필요한 교육지원사업비를 절감하되, 조합원에게 필요한 사업은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무이자자금을 잊어버리는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조합장들 인식 변화가 선결과제
경제지주를 최대한 협동조합 원칙에 따라 운영하도록 노력한 다음에야 농협 내부에서 경제지주의 재구성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농민조합원과 정부, 국회는 농협중앙회를 신뢰하면서 새로운 체계를 말할 수 있지, 지금같은 상황에서 지주해체는 어불성설이라 하겠다.
사족을 붙이자면 이미 선거가 끝난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여전히 당선자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이상하다. 현 회장은 법에 정한 4년 임기의 중앙회장을 4년 3개월까지 끌고 가려하는 데 말이다. 상식이 통하는 농협중앙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기태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조합원에 사랑과 존경받는 농협중앙회장 되려면
2016/01/08 16:31농업·농촌 현장을 일터로 삼아야
스위스 소매유통의 30%를 점유하고 있는 소비자협동조합 미그로를 창립한 ‘고트리프 두트바일러’ 회장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스위스 위인 중 2위로 선정됐다. 스위스 국민들이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협동조합지도자다.
우리나라 농협은 1945년 이후 해방된 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양적, 질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한 성과를 갖고 있는 반면, 농민조합원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고 오히려 중앙회장의 일신의 영달을 위해 농민조합원의 힘을 이용하거나, 정부정책에 순응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총자산 400조원 규모에 농산물 산지유통 점유율이 50%에 가깝고, 대부분의 조합원이 농협의 조합원을 탈퇴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농협에서 60여년의 세월동안 조합원 모두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지도자를 한 사람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는 12일 농협중앙회장을 선출하게 된다. 이번에 선출되는 중앙회장은 농민조합원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최초의 협동조합 지도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랑과 존경을 받는 협동조합지도자에게는 몇 가지 덕목이 있다.
첫째, 중앙회장은 농업·농촌의 현장을 자신의 일터로 삼아야 한다. 중앙회장이 되면 가장 먼저 중앙회 직원들의 장막에, 그 다음으로는 조합장들의 장막에 둘러싸일 수밖에 없다. 거대 협동조합인 농협중앙회인 만큼 각각의 사안마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흘러들고, 행사니 의전이니 따지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농업·농촌의 현장에서 멀어져버리게 돼있다. 하지만 비상임 중앙회장은 농민조합원의 구체적인 삶과 마음자리를 잘 살피는 일이 가장 앞서야 한다.
조합원·조합장 총의 모으는 책임자
뉴질랜드 키위협동조합의 자회사, 제스프리 인터내셔널의 대표는 1년의 절반을 조합원 지역모임에 참여해 방침을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임무를 지고 있다. 조합원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떠난다. 마찬가지로 농민조합원과 자주 만날수록, 이중의 장막에 갇히지 않고 조합원들의 눈과 심정으로 중앙회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 농협의 구호로 전국에 울러 퍼졌던 항재농장(恒在農場)의 모범을 신임 중앙회장이 몸소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둘째, 중앙회장은 농협의 장기발전계획을 농민조합원과 조합장의 총의를 모아 만드는 책임자여야 한다. 비상임 중앙회장은 한두 가지 사업의 성과를 갖고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농업·농촌과 농협의 10년 뒤 비전을 정하고, 농협이란 거대한 항공모함의 항로를 크게 결정하는 일을 해야 한다. 비전 만들기는 몇몇 전문가들의 손에 맡길 일이 아니다. 일선조합마다 농업내외의 변화 전망, 협동조합의 가치와 역할 등을 조합원에게 광범위하게 알리고, 조합원의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일선조합의 발전계획을 모아 전국적 차원에서 한 단계 높은 농협의 비전을 만들어 나가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충실히 이행하는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이 수반되는 일이지만, 이를 감수하면서도 100년 가는 농협의 초석을 놓는 지도자를 우리는 보고 싶다.
셋째, 중앙회장은 230만 농민조합원의 대표자로서 농민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데 분투하는 운동가여야 한다.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당시 1000만인 서명운동에 동참해 쌀시장 개방 유예의 성과를 이끌어낸 농협을 농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농업에 불리한 정책이 수립될 때 반박하는 의견을 강력히 제시하는 중앙회장이길 바란다. 농산물가격이 폭락했을 때, 큰 재해가 닥쳤을 때 현장에서 함께 눈물 흘리는 중앙회장을 보고 싶다.
농민 위한 정책 수립 운동가 돼야
출마한 중앙회장 후보의 공약을 보면 이런 덕목에 비춰 아쉬움이 크다. 조합장의 처우개선에 너무 많은 공약을 내걸고 있는가 하면, 수년간의 합의를 통해 정리된 농협사업구조개선의 성과를 뒤로 돌리려는 실현하기 어려운 공약도 있다. 조합에게 무이자자금을 더 많이 제공하겠다며 자율과 독립이라는 협동조합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공약을 걸고 있는 후보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농민조합원으로부터 존경받는 최초의 중앙회장이 되기 위한 큰 발심을 하길 기대한다. 농민조합원과 조합장들의 진지한 평가의 눈과 입이 지금 더욱 필요하다.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김기태 소장
언제 우리는 모두의 주인이 되는가? 진정한 공공의 주인이 되기 위해
2015/09/04 14:36“모두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라는 냉소적인 격언과 함께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라는 희망적인 전망의 드넓은 차이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민이 공공의 주인이 될 수 ‘있다’-‘없다’라는 희망과 절망 속에서 많이 흔들리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내 마음에 희망이 생기는 건 외부의 좋은 사례를 볼 때이다.
지난 6월 18일 군포시 비탈길에서 밀려 내려온 트럭에 아주머니가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트럭을 들어 올려 아주머니를 구해냈다. 대구에서는 8월 27일 전동휠체어에 탄 70대 할머니가 조작을 잘못해 지하철 선로로 떨어지자 한 회사원이 서슴없이 선로로 뛰어들고 승강장의 시민도 힘을 보태 구해낸 일이 있었다. 사람이 힘을 모아 선행을 베푸는 일은 수없이 많다. 이런 감동적인 사실을 접할 때마다 ‘나도 더 잘해야지’ 하며 희망과 힘이 나는 것이 사실이다.
반대로 부정적 사례를 볼 때는 인간에 대해 절망을 하게 된다. 며칠 전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전동차에 치인 사고가 일어났다. 참혹한 사고의 현장에서 도움은 주지는 못할망정 사진만을 SNS에 공유한 일부 네티즌의 이야기를 듣고서 대중의 무심함과 방관, 심지어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비인간성에 힘이 빠졌다.
최근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베테랑”의 마지막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감정에 젖게 된다. 주인공 형사 서도철과 反주인공 재벌3세 조태오간의 육박전이 벌어지는 명동 정도 되는 공간에서 두 사람의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주변의 군중들은 열심히 스마트폰만 찍어댄다. 어느 누구도 그 싸움에 개입하지 않는다. 물론 액션이라는 영화 장르의 문법에 충실하기 위한 연출이겠지만 자꾸 내 눈은 오직 바라보기만 하는 군중들에게 갔다. 그리고 그 행동하지 않는 거리두기에 안타까움과 갑갑증이 났다.
감정의 물결이 지나가고 난 후 ‘왜 그들은 그랬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제노비스 사건’과 임제선사의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법명이었다.
다양한 심리학 저서에서 인용하고 있는 ‘제노비스 사건’은 뉴욕의 한 거리에서 새벽 3시에 일어나 폭행, 강간, 살인 사건에 대해 주변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도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아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다.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주위에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잠재적인 책임’이 분산되어 어느 누구도 돕지 않고 지켜보기만 한다는 “방관자 효과” 심리학 용어를 만든 사건이다.
반면에 임제 선사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의 말씀은 어디에 있든지 주인이 되어야 하고, 어디에 서 있든지 바로 그 자리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도시라는 뿌리 뽑힌 지역사회공동체라는 말이 어울리는 일상적인 공간은 오히려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지식인스러운 당위보다 ‘방관자 효과’가 더 설명하기 쉽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거대한 공간일수록 개인이 주인이 되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권리보다는 책임을 강요하는 말이 되기 쉽다.
국가나 광역지자체의 정책에 참여하는 것이나 수천 명이 몰려 있는 명동에서 직접적으로 우리가 주인의식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모두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작은 공동의 경험을 통해 체험하고, 희망을 가지고 더 큰 공간에 대해서도 체험하는 방법들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군포의 사례가 담긴 동영상을 한 번 보면 알 것이다. 처음에는 몇 명이 적극적으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 많은 군중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에게! 그렇게 몇 명이 트럭에 붙어 힘을 쓰고, 그것을 본 주변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시 힘을 모은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을 조직해서 일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시작한 사람의 진정성이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된다. 맥락이 없이 모인 사람은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모임일 뿐이다. 맥락 속에서 모일 때 우리는 작은 사회를 만들고, 그 힘을 가지고 더 큰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베테랑”에서 주인공에게 반격을 기회를 준 사람은 명동에서 자리 잡고 상점을 열고 있는 주인이었다. 그는 작으나마 주인이었기 때문에 “그러면 안되지”라고 개입하게 되었다. 손님이 아니라 주인일 때, 혹은 주인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말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지도자들이다.
여러 조직을, 특히 협동조합을 운영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따져봐야 한다. 나는 지금 이 자리의 주인인가? 만약 주인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주인이라고 생각되도록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고,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왜 그런지 따져 봐야 할 것이다. 작은 공공의 장소, 작은 공유자산인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수처작주의 의지와 실행이 활발할 때만이 그 협동조합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그런 협동조합의 활동을 통해 적극적인 주인의식과 시민의식을 경험하고 훈련받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활발한 시민의식 속에서 문제 상황이 발생할 때 먼저 나설 수 있는 주인이 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진정한 공공의 주인은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공공이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실천할 수 있고, 그 삶 속에서 공공의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이다. 수처작주(隨處作主)를 몸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곧 공공의 주인이 아닐까?
모두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냉소와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라는 희망 속에서 흔들리지만 말고, 각각의 우리가 모여 작은 공유자산을 만들어 나가며 사다리를 놓아야 한다. 쉽지 않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을 하는 우리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희망을 가진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2015. 09. 03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김기태
법대로 운영되는 농협이 그립다
2015/09/04 14:35오히려 20여년간 현장에서 바라본 내 눈에는 농협법의 취지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농협이 대부분이다. 지금의 농협법은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를 비롯한 농민단체에서 20여년에 걸쳐 좀 더 협동조합다운 농협을 만들기 위해 계속 다듬으려 노력해 온 결과가 담겨 있다. 물론 더 보완해야 할 점도 많이 있지만, 지금의 농협법이 정한 취지를 제대로만 지켜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조합원 대상 제대로 된 교육은 의무
제대로 된 협동조합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조합원에게 제대로 된 협동조합 교육을 제공하는지 아닌지, 그 교육의 종류와 수준을 보는 것이다. 농협법 제60조 제1항에는 “지역농협은 조합원에게 협동조합의 운영원칙과 방법에 관한 교육을 하여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의무사항이다.
생각해보면 신규 조합원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하는 곳이 있는가? 국제협동조합연맹의 정의와 가치, 원칙을 풍부하게 설명할 수 있는 임직원이 몇 명이나 되는가? 조합원들에게 보수교육을 얼마나 제공하고 있는가? 스스로 조합원들이 협동조합교육을 하겠다고 농협에 신청하면 선선히 지원해 주는 농협이 얼마나 되는가? 대의원들이 원하는 협동조합교육을 제공하는 농협이 있기는 한가? 이·감사가 농협 교육을 받으려 할 때 교육정보와 지원을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농협이 있는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이 속한 농협이 이런 기준으로 평가해 보기 바란다. 충분한 농협이 있다면 연락해 달라. 필자도 법대로 운영되는 농협을 만나고 싶고 자랑하고 싶다.
협동조합 맏형다운 모습 보여줘야
최근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 전국적으로 다양한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있다. 농촌지역에도 수백 개의 농식품 관련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있다. 몇몇 농협은 이들과의 협력방안을 찾고 있지만, 대부분의 농협은 소 닭 보듯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농협법 제10조 ‘다른 협동조합 등과의 협력’에 따르면 “조합등과 중앙회는 다른 조합, 조합공동사업법인, 품목조합연합회, 다른 법률에 따른 협동조합 및 외국의 협동조합과의 상호협력, 이해증진 및 공동사업 개발 등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역시 의무사항으로 적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농협들이 인근의 신협과 새마을금고, 생협과 협력하는 방법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경쟁대상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심지어 다른 협동조합의 직거래 활동에 대해 농협 측에서 견제하기 위해 고발을 했다는 사례도 접수되고 있다.
협동조합간의 협동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농협 내부의 충분한 토론과 합의도 없다. 강원도의 어떤 지역은 농협과 협력관계를 맺으려고 수차례 만났으나 이유도 없이 협력하지 않고 있다. 이러니 농민조합원 뿐만 아니라 주민과 국민들의 농협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 농협법 제10조가 장식품이 아니라면 구체적인 실천을 해야 하지 않을까? 협동조합의 맏형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농협이 사무치게 보고 싶다.
내가 속한 농협 현실부터 따져보길
농협에 대한 농민조합원의 불만이나, 농협중앙회에 대한 일선조합이 불만이 나타난지는 이미 수십년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중앙회와 조합의 적극적인 개선활동보다 “농민조합원이나 일선조합이 상황을 잘 몰라서 오해하고 있다”는 말로 얼버무리려 한다. 심지어 일선조합에 대해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트집을 잡거나 심지어 소송을 통해 겁박을 주는 경우도 있다.
농협법 제5조는 “조합과 중앙회는 그 업무 수행 시 조합원이나 회원을 위하여 최대한 봉사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내가 속한 농협은 그렇게 하고 있다고 조합원들이 자랑할 수 있는 농협을 찾고 싶다.
법의 취지대로 운영되는 농협을 찾기 어려운 현실이 지금 우리 농협의 자화상이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이 글을 농협의 임직원에게 보여주면서 우리 농협의 현실을 따져보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자.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김기태 소장
농협발전 계모임을 만들자
2015/08/04 16:03170년 세계 협동조합 역사를 통틀어 보면 협동조합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조합원들이 얼마나 협동조합의 실질적인 주인으로서 활동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외부의 환경이나 정부의 지원제도가 협동조합에게 유리할 때에는 그다지 어려움 없이 협동조합들이 발전할 수 있고, 조합원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줄 수 있다. 지난 50년간 농협은 사업적으로만 보면 이런 좋은 여건에서 운영되고 성장해 왔다.
협동조합, 조합원의 수준만큼 발전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을 듯한, 그래서 세계적으로도 모범사례로 통하는 우리나라 농협인데, 왜 농민조합원들의 불만은 커져만 가는 걸까? 그 대답은 역설적이게도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수준만큼 발전한다’는 이 당연한 말이 농협 내부에서 사라져 가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왜 그런가? 조합원의 교육을 다루는 농협법 제60조의 1항에 따르면 ‘지역농협은 조합원에게 협동조합의 운영원칙과 방법에 관한 교육을 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고 조합원의 책임을 규정한 제24조의 2항에서는 ‘조합원은 지역농협의 운영과정에 성실히 참여하여야 하며, 생산한 농산물을 지역농협을 통하여 출하하는 등 그 사업을 성실히 이용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인 이들 조문을 굳이 농협법에 명시한 취지는 조합원이 마땅히 져야할 책임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농협의 주인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누리기 위해서는 조합원에 대한 협동조합의 운영원칙과 방법에 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농협이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협동적 지도자들 힘모아 유대해야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농민조합원 가운데 국제협동조합연맹이 정한 협동조합의 7가지 원칙과 가치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은 조합원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조합원들에게 제대로 된 협동조합교육을 시키는 조합이 몇이나 될까? 농민들이 ‘대의원 대상의 협동조합교육을 해달라고 농협에 요구하니 이런저런 이유로 회피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상담전화를 협동조합연구소로 걸어오는 상황이니 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심지어 농협직원과 거나하게 술을 마신 자리에서 내 귀로 직접 ‘조합원에게 교육을 시키면 직원들이 귀찮아져서 안 돼’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농협개혁을 말하면서도 협동조합의 원칙을 위배하는 주장을 하는 경우를 접하기도 한다. 극단적 사례이지만 어떤 분은 농협개혁의 방법이 있다며 ‘농협이 잘되려면 이용고배당을 없애고 출자배당을 100%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농협이 판매사업 수수료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분들의 선의와 열정은 이해를 하지만 이런 경우 참 난감하다. 제대로 된 협동조합 교육은 이제 농협이 반드시 해야 할 필수 과제이다.
하지만 평균 1500명에 고령화가 진행되는 조합원들 모두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십 명의 조합원을 모아 놓고 1년에 서너 번 하는 집체교육으로 조합원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도 사실상 어렵다. 몇 시간의 강의만으로 협동조합 활동가에게 필요한 정보를 만족스럽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잘 되는 농협을 살펴보면 함께 모여 정기적으로 협동조합이나 주 품목의 생산유통을 공부하거나 의견을 나누는 모임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판을 넘어 공부하고 대안 찾길
한 명의 조합장이 농협을 혁신하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 협동조합은 여러 협동적 지도자들이 함께 지혜와 힘을 모아 바꿔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전통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계모임이 제격이다. 여건이 좋으면 농협이 있는 읍면마다, 그렇지 않으면 우선 시군에서부터 한 달에 한 번 모여 한두 시간 농협과 관련된 책이나 정보를 읽고 이야기를 나눈 다음, 뒤풀이로 먹고 마시면서 유대를 다지는 ‘농협발전 계모임’을 운영하자. 농협이 주도하고 지원해 주면 더 좋고, 그렇지 않으면 농민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도 된다.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만드는 것이 어렵다면 한국협동조합연구소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농업협동조합의 발전을 위한 모임은 한 사람이 열 걸음을 가는 것보다, 열 사람이 한 걸음을 가듯이 해야 한다. 또한 비판을 넘어서 대안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처음에는 이런 계모임의 힘이 미약하더라도 천천히 사람들이 모이고, 시간이 쌓여 가면 여름철 장마이후 쑥쑥 자라는 농작물처럼 희망이 보일 것이다. 작지만 따뜻하고 함께 만드는 ‘농협발전 계모임’에서부터 우리지역 농협의 발전에 시동을 걸자.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김기태 소장
협동과 배신, 사랑의 메타포 - 왜 우리는 가까이 있는 자에게 절망하는가? 희망하려면? -
2015/07/07 11:05‘배신’이란 키워드가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특히 속으로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응징’하겠다는 결의를 밝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배신자가 나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신뢰를 얻고 있는 사실을 참지 못하고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 이다. 나는 먼저 배신당했지만, 너희는 반드시 나중에 배신당한다. 그러니 알아서 잘해라. 뭐 이런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이리라.
멀리 있는 사람, 친하지 않은 사람, 원래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에 대해서 ‘배신’이란 말을 쓰지는 않는다. 함께 일해도 단순한 계약관계로 일한 사람에게는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냥 주고받는 사이이니까.....
오히려 가까운 사람,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함께 일한 사람, 혹은 실제로는 거리가 있더라도 내가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배신’이란 말을 주로 사용한다. 넓은 의미에서 ‘동지’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나의 생각이나 행동과 다를 때, 그 다른 점이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때 ‘배신’이란 말을 사용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보면 ‘배신’이란 말은 연애의 용어이다. 그것도 치기어린 연애의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성숙한 사랑은 헤어질 때조차도 배신이라는 말보다는 용서와 긍휼함과 안타까움으로 물들어지지, 사랑을 속삭이던 달콤한 입으로 사랑의 저물녘, 어둠이 깔려가는 동네 어귀에서 저주를 퍼 붓지 않는다.
성숙한 사랑이라면 서로의 입장이 달라지고, 서로가 다른 방향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연히 알았을 때, 혹은 그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할 때부터 상대방의 입장과 의견에 대해 마음을 터놓고 듣고, 내 생각과 안타까움을 이야기하며 관계의 회복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말과 눈빛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자리가 갈라지기 시작하면 서로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의 변화로 인해 갈라질 수도 있다. 다만 그 사랑을 이어가려는 과정에서 서로의 진실성이 서로에게 느껴졌다면 두 사람은 각자 새로운 길을 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일은 한 명이 성숙한 사랑을 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이 치기어린 사랑을 하는 데서 나타난다. 사랑이란 게 처음부터 정신분석을 할 수도, 족보를 파고 들 수도 없어 그냥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끌려서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차츰 사랑이 식어 가면서 두 사람의 바닥이 드러나는데 치기어린 사람이 떠날 때면 큰 문제가 없지만, 성숙한 사람이 떠나려고 할 때는 울고불고 매달리고, 홧김에 사고가 생기기도 하고, 루머가 돌고, 심지어 스토킹으로 비화되기도 하고......
정치도 마찬가지고, 특히 사람 중심의 조직인 협동조합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어쩌면 여러 명이 함께 사랑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자칫 하면 더 많은 좋지 않은 말이 돌아다닐 수도 있다. 다른 점이라면 정치는 권력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더 크게 더 격렬하게 공개적으로 파탄이 나게 되지만, 협동조합은 소수의 몇몇의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편을 갈라 싸우기 십상이다.
작은 협동조합,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협동조합에서 조합원들끼리 혹은 임직원끼리 사랑이 식는 것은 살아가기 팍팍하고,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주로 발생하는 것 같다. 마치 가난한 연인들의 다툼이 주로 그런 이유로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 배신감을 갖지 않기 위해서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설혹 연애 초기에는 잘 보이려고 큰 소리도 쳤지만, 함께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마당에 큰 소리에 계속 매혹당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빈손을 드러내고 맨발을 보여주는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그러고 난 후에도 사랑이 식을 수 있지만, 적어도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함께 술지게미로 끼니를 때우며 그래도 지금보다 나은 소박한 미래를 함께 계속 이야기해 나가야, 서로서로를 조강지처로서 긍휼히 여기고 안타까움에 먼저 배려하지 않을까 싶다.
규모가 큰 협동조합이나 협동조합간의 협동을 추구하는 큰 연대조직이나 2차 협동조합, 연합회의 구성원들끼리 사랑이 식으면서 ‘배신’이 운위되기 시작하면 정치에서의 그것과 비슷해진다. 크든 작든 나름의 권력과 자원을 둘러싼 겨룸이기 때문이고, 상대방의 얘기보다 내 얘기를 들어주려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이미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조직에서 지도자들은 이미 스스로를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애정을 준 다른 사람도 충분히 성숙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느끼는 실망감은 더욱 크게 증폭된다.
이렇게 갈등이 증폭되는 이유는 ‘성숙’의 필요수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간의 사랑에 필요한 성숙 수준과 단위 협동조합을 꾸려나가는 데 필요한 성숙 수준과 협동조합의 중요한 지도자로서 활동하는 데 필요한 성숙 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공인에게 더 큰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은 그가 공적 지도자이기 때문인데, 협동조합의 주요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더 큰 성숙, 더 큰 비전, 더 큰 호연지기, 더 큰 인내심, 더 큰 포용심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협동조합의 주요 지도자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클 수밖에 없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공을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성공의 경험은 지금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과 이론에 대한 자기 확신을 더 강하게 하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런 협동조합 주요 지도자의 마음은 좋은 의미에서 어느 정도 ‘나르시시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점이 없다면 누가 더 큰 의무를 스스로 짊어지고 밤낮도 없이 뛰어 다닐 것인가? 당연한 일이다.
협동조합 주요 지도자들의 갈등은 이 두 가지, 즉 상대방의 성숙성에 대한 높은 기대와 자기 확신이 강한 상황에서 상대가 나에게 맞추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맥락과 수준은 전혀 다르지만 사실상 ‘처음으로 연애하는 풋내기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라도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절망할 경우가 많다. 40이 되어도 숱한 번민에 괴로워하고 , 50이 되어도 천명을 알기 어렵다. 배신이나 실망감을 크게 외치는 것은 나의 협량한 마음, 크게 협동하지 못하는 마음을 드러낼 뿐이다.
불혹과 지천명은 성인의 반열에든 공자의 이야기이지 그렇지 못하다고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협동을 희망하려 한다면 오직 우리는 상대방과 더 좋은 사랑을 하기 위해 말을 걸고, 삼가하고, 함께 어깨를 걸고 나의 두 발로 걸어갈 뿐이다. 그러다 다른 방향으로 가려한다면 충분히 소통한 후 그래도 가려 한다면 다시 만날 때만 기약하면서 잘 지켜봐 주면 된다. 협동은 인류 역사를 통해 발전해 온 것, 길게 볼 일이다.
2015. 07. 06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김기태
농협 직원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2015/06/23 09:14관련된 연구와 컨설팅을 하면서 현장의 농축협의 직원 분들을 대상으로 교육이나 특강을 할 일이 종종 생긴다. 직원 분들에게 협동조합 활동가로서 협동조합의 원칙과 직원의 의무와 책임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우수사업 사례를 이야기 하면서 혁신할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반응은 어떨까? 분위기가 뜨뜻미지근한 것이 사실이어서 이런 반응에 실망하고 죽어도 안 바뀌는 사람들이라고 비판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 새롭게 생각을 일깨우게 된 계기가 있었다. 조합원을 위해 일을 잘한다고 평가받는 농협에서 20여 년간 일을 하다 퇴직하신 선배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는데, 앞서 말한 대로 협동조합의 원칙과 개혁을 요구해도 많은 조합에서 그런 반응이 당연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동안 협동조합과 직원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없다가 근래에 많은 변화를 이야기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것에 실제 부응하기 어렵고 농협내 직원이 위치한 환경자체가 실제 일을 혁신해 나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직원이 협동조합 활동가로서 조합원에게 봉사하고 농협의 발전을 주도할 수 있으려면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것인가? 근본적이고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고민을 안고 돌아왔다.
비판받는 농협직원, 그러나 당사자는 억울하다.
조합원이 농협직원을 비판하는 이유로 ‘조합원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유지와 급여를 위해 맹목적으로 일한다’라는 것을 많이 이야기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급여의 수준이나 직원에 대한 복지혜택 등을 대폭 삭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각 농협에는 정말 그러한 직원들도 있고 아닌 직원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전체를 비판하기에는 당사자 직원으로서 억울하다는 반응이 많다. 앞에 만난 선배는 이런 비판이 늘어나는 것의 이유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동안의 역사를 보면 과거의 농협의 경영환경에서는 지금처럼 직원의 높은 역량이 요구될 필요가 없었다. 농협은 물자구매, 정부수매사업의 대행 등 단순한 수탁위주의 경제 사업을 하였고, 신용사업도 단순대출만으로 충분한 수익을 내어 조합의 손익을 충분히 맞출 수 있었다. 조합원분들도 농협이용에 큰 불만이 없을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시장개방등 농업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조합원은 생존을 위해 조합에 많은 기대를 걸게 된다.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농협이 기대에 부응해 경제 사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은 생산부터 소비유통까지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는 고도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기획력과 아이디어의 싸움에 한시도 쉴 틈이 없다. 정부사업도 공모사업으로 잘하는 지역만 주니 앉아서 사업하기는 힘들다. 이제는 신용사업도 한정된 지역 고객에게 과거의 예금대출로는 수익이 안 되어서 다양한 금융상품을 판매하고 외부투자의 위험에 수익을 담보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직원들도 조합과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서 열심히 해야 하는 것도 알고 조합원분들이 비판과 요구를 하여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많은 직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하고 싶어도 실천전략과 구체적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협동조합 직원으로서 자꾸만 해라해라 하는 것은 반복되는 메아리이고 본인들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정작 몸이 못 움직이는 것이다. 직원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가르쳐주고 역량을 개발하고 교육하고 전문가가 도움의 주는 등의 방법이 따라 주어야 지금 어쩔 줄 몰라 하는 많은 직원에게 실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역의 소규모 농협의 경우 다양하게 증가하는 농협의 사업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에 비해 각 사업을 담당하는 사람은 한명이 채 되지 않는다. 같이 상의하고 도와줄 팀과 선배가 없다는 것도 직원으로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으로 자연히 빠뜨리게 된다.”
농협 직원이 협동조합의 발전에 기여하기 방법의 모색
앞서 나온 이야기 외에도 지역농협의 직원의 업무구조는 전문적 역량을 체계적으로 키워나가고 또한 직원의 자발적 창의성이 사업과 성과에 반영되기에 한계점들이 존재한다. 일례로 농협의 경제사업인 농산물 판매 및 마케팅 업무와 신용사업의 채권관리 업무는 완전히 다른 영역의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직원간 직무순환 원칙에 따라 어느 정도 전문성을 쌓을 때쯤이면 다시 완전 다른 사업으로 옮겨서 새업무에 대한 교육을 다시 받는 등 현재 인사체계상 전문성을 살리기에 어려움이 있다. 특히 농촌지역의 소규모 농협의 1인 1업무담당의 구조에서는 전직에 따라 재교육과 직무적응에 시간이 더욱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소규모 조합에서 20여명 남짓한 직원으로는 전문적인 직무수행이 어렵다. 이런 문제만 놓고본다면 농협의 규모가 확대되어 직원의 숫자가 증가한다면 관련 직군별로 승진과 재교육이 가능하여 장기적으로 전문성을 쌓을 수 있고 업무당 팀별 조직체계를 바탕으로 직원간 상호학습 및 실행오류의 감소로 업무의 효율적인 추진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이 문제는 향후 농협의 합병, 조합공동사업법인 등의 개편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인 만큼 함께 제도적으로 검토되면 좋을 것이다.
또한 변화된 다양한 업무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직원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 따라서 지금 고도화되고 전문화되는 직원의 역할기대에 맞는 농협직원의 역량모델을 개발하여 이에 맞는 직무교육프로그램들을 개선보완 및 추가해야 할 것이고 직원의 채용, 교육, 인사 등에 적극 연결되어야 한다. 이는 농협중앙회 및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항이다. 농협 전체의 대폭적인 변화가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조합 자체적으로도 현 제도의 범위 내에서 직원의 능력개발 및 인사보상과 관련된 내용에 대한 고민을 외부의 도움을 받아 진행해 봄이 좋겠다.
사람이 하는 일은 결국 사람간의 관계와 관심 속에서 문제와 해답이 모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직원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대해서는 조합장 및 임원진 간부직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직원은 나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임금삭감 등 강력한 조치는 조합원대 직원의 갈등을 조장하고 조직자체를 무너뜨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또한 반대로 손익적 성과에 치중하여 특정사업부의 편애와 직원에 대한 대우는 타 직원에게 동기를 약화시키고 전직을 희망하는 등 조직문화에 균열을 초래할 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개인적 인맥에 따라 인사가 이루어지거나 자리를 둘러싼 부정 거래가 있다면 그 조합 직원이 더 이상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직원을 이끄는 리더는 조합과 조합원의 전체 편익의 차원에서 사업을 평가하고 이에 연계한 성과보상을 의식적으로 잘 독려할 필요가 있다. 문제점만을 들추어 자꾸 줄이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일한만큼의 정당한 급여를 충분히 제공하되 그 값어치에 맞는 역할과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직원에게 투자한 만큼 조합과 조합원에게 더 큰 성과가 같이 풍성해지도록 하려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즐겁게 근무할 수 있는 조건을 주어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본인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직원에는 인센티브를 주어 더욱 분위기를 붇돋아 주어야 하지 않을까?
농협 직원문제의 접근하기 위한 연구과제의 설정
앞서 제시한 문제의식과 대안의 방향은 깊이 있는 연구보다는 단편적인 경험에 의존한 것이고 그 해결책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검토와 토론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당장 어떻게 하자고 하기에는 대안들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연구소 내에서도 그동안의 농협개혁의 연구에서 중앙회 구조개편, 농협의 판매사업 등 특정 주제로의 연구나 정책반영 등의 흐름은 있었지만 정작 사람의 문제인 조합원, 직원에 대한 연구는 깊지 못하였다는 것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특히 농협의 직원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종합적인 현상연구나 제도적 발전 방안 등의 내용에 대한 고민이 많이 없었다. 그리고 현재 논의되는 일선조합의 개혁논의 등에서도 조합원으로부터 출발하는 논의는 있지만 직원에 대해서는 논의의 출발점이 없어 어떻게 지역농협의 발전전략과 직원의 조직구조의 문제를 연결시킬지에 대한 고민들이 있다. 농협 조합원의 역량을 향상하고 조합원의 참여와 감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더라도 직원은 예전그대로의 조직체계 속에서 무엇을 할지 모른다면 조합의 발전이 완성되지 않는다.
농협을 움직이는 힘 중에서 직원이 담당하고 있는 부분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남이 강제적으로 의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협동조합 활동가이며 농협 최일선에서 일하는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본인의 업무에서 능력이 발휘되고 성과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조직의 구조와 문화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우리도 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실적인 방안들을 고민하고 찾아내어 실천해 보고자 한다.
2015. 06. 19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농협·지역연구부장 김원경
일본 농협의 개혁 논의와 한국 농협의 시사점
2015/02/23 16:11정말로 중앙회를 없애려 하는가?
이번에 아베정부에서 제시한 개혁안은 작년 5월께 일본 정부의 규제개혁회의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농업개혁안 내용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농의 개혁뿐만 아니라 일본농협 구조의 대대적인 수술을 하겠다는 취지인데 그동안 유지해온 농협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당시 일본의 농협과 관련하여 발표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농협의 연합회로서 지도 및 농정기능을 담당하는 농협법상의 특수법인인 JA전중(全中)을 일반 사단법인으로 전환한다. 이에 따라 모든 농협이 전중에 반드시 가입할 의무가 없어지며, 그동안 전중이 행사하던 감사도 조합이 자율적으로 외부의 회계감사법인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기존의 전중이 가지고 있던 전체 농협의 연합회로서의 농정기능과 조합의 감사기능을 수행하던 위상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둘째, 경제 사업을 전담하는 연합회인 JA전농(全農)을 주식회사로 전환한다. 일반 주식회사로 전환하여 전문적인 유통 등 사업기능을 수행하겠다는 것인데, 연합회로서의 역할보다는 기업의 경쟁력 측면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는 흡사 우리 농협중앙회의 경제 사업이 경제 지주형태로 분리된 것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셋째, 농협의 준조합원 사업이용을 일정수준이하로 제한한다. 관련하여 5년간 ‘준조합원제도’에 대해 이용실태와 농협개혁 상황을 보고 사용 제한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넷째, 지역의 농협에서 신용사업 기능을 분리하여 농림중앙금고로 이관하고 공제사업은 폐지하며, 농협은 금융업의 대리점 역할을 수행하고 경제사업 위주의 사업을 하도록 하였다.
다섯째, 농협과 연합회의 조직분할과 법인격 전환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그동안 이 개혁안에 대해 JA내에서는 강력히 반발하는 가운데 그동안 실제 이행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진 견해들이 있었다. 이러한 정부의 개혁시도가 과거에도 있었지만 결국 실행되지 않았고 대책의 논의과정에서 타협의 여지도 있었기 때문에 소폭의 개혁안을 마련하는 수순으로 정리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최근 일본 언론에서는 ‘JA가 패배했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정부가 본 개혁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농협의 수익고객인 준조합원 이용제도를 없애겠다고 압박하는 등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였고 결국 JA그룹도 저항하지 못하고 개혁안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과거 국회를 통해 개혁논의를 저지하였지만 민주당의 약화와 자민 집권당의 정책추진 의지가 강해 쉽지 않아 보인다. JA전중폐지 문제와 초기 개혁안과 함께 농협법 개정과 관련된 구체적 개혁안의 결정은 금년 6월경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농협의 개혁조치 배경과 전망
이번 농협개혁 추진의도와 필요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작년 국내서 만난 일본의 한 연구자는 이번 농협의 개혁조치에 대해서 일선 조합장의 찬반의견이 반반이라고 하면서도 ‘지역의 회원농협들이 원하는 것이다’라고 필요성을 피력 하였다. 그동안 전중의 역할이 독점적 권한을 가지고 통제하려고만 하여 농협들의 자율성이 침해하였고 각 농협의 중앙회에 대한 납입금 부담이 크다고 하였다. 오히려 농협이 자율적인 경영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의 개혁조치에 대해 일반국민들의 정책에 대한 공감도가 높은 상태라고 설문결과를 설명하였다.
반면 또 다른 연구자는 기고 글에서 지금의 사태가 아베정권에서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적 농업개혁의 여러 조치들 중 일부로서 현재 농협이 담당하고 있는 생산유통의 독점적 지위를 약화시키고 일반기업과 경쟁하도록 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기업의 농업 진출을 위한 농지 규제의 철폐와 기업을 통한 6차산업화 강화 등 다른 농업경쟁력 강화 방안과도 연관이 있으며 아베노믹스의 추진방향과 배치되는 소농중심의 농업생산구조와 농협의 유통기능 및 농정활동을 축소시키려 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한편 일부에서는 이번 조치가 자민당과 아베의 농업 개방정책에 반대하는 전중을 정점하는 JA그룹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TPP추진에 대한 고려가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JA전농 및 일본농협은 그동안 TPP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번 조치가 받아들여지게 되면 일본농협의 농정활동과 농업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약화될 것이다. 일본의 농협의 경우 농민의 의견을 대변하는 통로로서의 역할이 축소 될 것이다. 이번 개혁이 아베정권의 농업의 구조조정과 연계되면서 ‘과연 농민을 위한 개혁이냐?’라는 측면에서 일본 내부에서도 정치권의 논쟁이 지속되고 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개혁의 효과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농협의 사업과 관련하여서는 기존의 체계에 익숙한 개별 농협의 입장에서도 어떻게 경쟁력을 높이고 자체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할지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농협의 중앙회 체계가 일본과 유사한 측면이 있어 그 동안 개혁조치에 대해서 상호 벤치마킹을 하며 적용해왔었다. 이번 일본의 개혁은 중앙회 지배체제개편과 일선조합의 신경분리 등과 같은 문제에 있어 주목할 만한 사례가 될 것이다. 다만 무비판적 수용을 경계하고 협동조합의 주인인 농민조합원을 위한 개혁방향은 무엇인지, 협동조합의 설립목적과 운영원리에 가장 적합한 조직체계와 사업구조는 무엇인지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성은 있다.
개혁당할 것인가? 스스로 개혁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지금의 상황이 일본의 농협조직이 스스로 추구하는 개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그동안 쌓여온 조합원과 일선농협의 불만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결국 농협조직 전체가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베정권의 이해관계에도 개혁요구에 대한 농민들과 국민이 공감대가 어느 정도 있었기에 정부도 강력한 조치를 단행할 수 있었다.
과연 우리나라의 농민조합원과 농축협들은 중앙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요즘 추세로 보면 불만은 커지고 농협조직의 개혁요구는 더욱 높아지는 것 같다. 특히, 2012년 중앙회 신경분리를 통해 일대의 변화가 있었지만 중앙회에 대한 조합원과 농축협의 만족도는 여전히 높지 않고 각 농협의 경영은 악화되어 현재 중앙회체계에 대한 명분을 점점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농협중앙회의 역할이 일선조합원과 회원 농·축협으로부터 얼마나 지지를 받는가가 중요한데 우리도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이 문제 상황에 대해 자발적으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정부 및 정치권에 의해 반강제적인 개혁을 당하고 말 것이다. 농협과 농민이 개혁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체가 된다면 과연 235만 농민조합원이 원하는 방향대로 농협개혁이 될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즉, 농협 먼저 문제를 인정하고 개혁의 방향을 제시 못한다면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에 휩쓸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농협개혁이 되지 않을까?
우리의 교훈은 하나이다. 협동조합의 정신에 입각하여 농협이 먼저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 임직원들은 조합원과 일선조합이 요구하는 농협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인식하고 만족할만한 대책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농협과 중앙회의 역할이 조합원과 국민의 동의를 받지 못하게 되면 결국 다시 수술대에 강제로 밀어 올려 질 것이다.
2015. 02. 17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농협·지역연구부장 김원경
협동조합의 딜레마, 필요와 유대의 불일치
2014/10/23 10:23대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을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대리점주들이 모였다. 유통마진만으로는 충분한 수익을 창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들만의 전용제품을 만들어 판매를 하려 한다. 이전에 자체 상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은 경험도 있어, 사업 가능성도 충분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대리점주들이 모이는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공급업체의 눈치를 보느라 모이는 것이 쉽지 않다.
한편,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교육 과정을 함께 이수한 시니어들이 모였다. 30시간 이상 함께 교육을 듣는 과정에서 서로 친해지기도 했고, 인생 2막을 함께 준비해 보자고 의기투합이 된 것이다. 때마침 평생교육원의 시니어 교육 과정을 하나 맡게 되어, 교재 개발도 하고 직접 강의도 하는 등 기분 좋게 출발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협동조합이라는 법적 조직을 만들어 모임을 공식화하려고 하는데, 인생 2막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사회공헌, 강사, 컨설턴트 등 다양하다.
협동조합을 시작하는 분들의 대표적인 사례 2개다. 과연 어느 경우가 협동조합으로 더 잘 만들어질 수 있을까, 대리점주 아니면 시니어?
협동조합은 ‘필요를 사업으로 전환한 기업’이다. 따라서 협동조합의 장점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필요를 통일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대리점주들의 필요는 분명하고 단일하다. 자기들만의 전문제품을 만들어 유통마진을 줄이는 것. 이에 비해 시니어들은 인생 2막 준비라는 공동의 필요가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공헌, 강사, 컨설턴트 등 필요를 통일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대리점주들의 협동조합이 ‘잘 나갈’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의 모습이다. 시니어들은 매우 활발하게 모임을 해 나가는 반면, 대리점주들은 모이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상황이다. 물론 시니어는 시간의 여유가 많고 대리점주는 사업하느라 시간이 없다고 원인을 진단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모든 시니어가 잘 모이는 것은 아니고, 모든 사업자들이 잘 안 모이는 것도 아니어서, 앞의 진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필요를 사업으로 전환한 기업' 이란 협동조합의 정의 앞에 '유대를 기반으로' 라는 전제를 붙이기로 했다.
'필요'가 아닌 '유대' 라는 관점에서 보면, 시니어들은 30시간 이상의 강의와 공동의 교육 진행을 통해 상당한 유대가 형성되어 있다. 반면 대리점주들은 필요는 분명하나, 별다른 유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에 기반해 있지 않은 필요란 모래알도 같아서, 사소한 이해관계에 의해 쉽게 이합집산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비록 아직 구체적인 사업계획으로 고민이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시니어들의 협동조합이 '가능성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협동조합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필요를 통일시켜야 하는 과제와 유대를 형성하는 과제 중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에 기반하여 필요가 통일된 협동조합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더욱 지속 가능할 것이다. 유대가 강한 사람들은 필요를 통일시켜라! 필요가 일치된 사람들은 유대를 형성하라! ‘필요와 유대의 불일치’를 넘어서는 것, 성공하는 협동조합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관문이다.
2014. 10. 21
서울시 협동조합 상담지원센터 센터장 박범용
프란치스코의 리더십에서 배우다
2014/09/03 13:23프란치스코는 많이 알려진 대로 스스로 높은 권의를 지양하고 청빈한 삶을 지향한 인물이다. 생활 속에서 묻어나는 그 모습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지도자로서의 참다운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부터 종교지도자로 활동한 수십 년간의 행적 자체가 그러하였기에 누구도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그가 보여주는 모습들은 각계각층에서 참다운 지도자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자는 물론 협동조합의 수많은 지도자들에게도 파파 프란치스코와 같은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협동조합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 협동조합을 대표하는 사람은 냉철한 사업가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의 봉사자이자 운동가로서 사람들의 삶을 따뜻하게 밝혀줄 지도자이다. 구성원들에게 우리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모두를 따뜻하게 보듬으며 먼 길을 차근차근 이끌어야 한다.
이미 협동조합의 지도자와 많은 활동가들에게서 유사한 리더십을 엿볼 수 있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고 스스로 솔선하는 지도자들이 많아질수록 발전할 수 있는 곳이 협동조합이다. 돈 많은 회사의 사장님과 종업원의 관계보다 협동조합의 구성원은 다함께 같은 목적으로 일을 도모해 나가는 동료의 자리에 함께 서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농·수협과 같이 수많은 조합원을 거느린 협동조합으로 발전한 조직에서 이에 반하는 행동으로 조합원에게 외면 받는 지도자들이 아직도 일부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급 승용차에 수행기사를 대동하고 떵떵거리면서 다니는가 하면, 조직 장의 지위를 이용하여 개인이익을 탐하다 조합과 조합원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례까지 있다. 참일 꾼으로 살겠다던 분도 조합장이 되는 순간 큰 벼슬이라도 받은 듯 권의의식에 젖게 되고 조합원들과는 멀어져 소통을 가로막는 벽을 스스로 가져다 놓는다. 조합장의 관심사는 더 이상 동료 조합원의 필요사항과 목소리가 자리욕심이다. 결국 많은 조합원들이 스스로 뽑은 지도자를 자신의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고 수많은 갈등을 가져온다.
프란치스코의 행동과 말에서 협동조합 지도자의 이상적 모습을 그려본다.
첫째, 스스로를 낮춘다. 프란치스코는 역사적으로 입증된 강력한 권위를 보이는 자리에 올라서도 겸손과 소박함으로 살고자 스스로를 낮춘다. 협동조합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은 물질적 특권이 아닌 나와 동등한 조합원에게서 조직을 대표할 권한만 빌려온 것이다. 공동체를 위한 봉사자의 자세로 낮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사람을 가장 먼저 생각한다. 프란치스코는 고삐 풀린 돈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사람간의 삶을 둘러싼 유대와 관심에 대해 명확한 메시지를 전한다. 협동조합의 경영에서도 사람중심의 공동체로서의 협동조합 정신을 유지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협동조합은 사람이 시키는 일이며 자본주의 사회경제를 바꿀 수 있는 힘이며 리더들은 사람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셋째, 정의를 생각한다. 프란치스코가 세월호 유가족을 각별히 한 것에 대해서 정치적 논쟁이 일었을 때에도 그는 ‘고통 받는 사람 앞에서는 중립적일 수 없다’라고 이야기하였다. 지도자는 협동조합의 운동가로서 사회공동체가 정의로운 길로 나가는데 모범이 되는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삶과 조직 활동 속에서 정의를 해치는 일에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많은 분들이 참다운 리더의 모습을 항상 생각하며 자신의 재능을 십분 잘 발휘하여 아름다운 협동조합을 만드는데 기여하여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또한 우리가 좋은 사람을 알아 봐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고 리더의 역할을 부여할 때 우리 협동조합도 나날이 발전할 것이다.
2014. 09. 02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부장 김원경농협의 역할, 깊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자
2014/07/16 13:35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 하지만 그건 이미 포기한 사랑을 일컫는다. 사랑의 반대말을 증오라고도 하지만 그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한 투정에 불과하다. 사랑의 반대말을 굳이 꼽으라면 ‘안타까움’인 것 같다.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뜨겁게 한 몸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거나, 노력하고 노력해도 나만의 힘으로는 쉽사리 가까워 지지 못하는 상태! 길지 않은 내 삶의 흐름 속에서 농협은 언제나 안타까움의 대상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지난 15여년간 농민단체 교육이나 강의 등 다양한 자리에서 농협이 가진 자원과 잠재력을 더 발휘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하라며 농협 개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농협 컨설팅을 통해 다양한 모범사례를 만들어 농협의 역할을 홍보하는 데 기여하기도 하고, 농업정책을 설계할 때 농협이 지원 대상에서 빠지면 안 된다고 역설하거나, 농협이 가지는 시스템의 힘을 인정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친농협 인사’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농협을 사랑하면서도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맏형이기 때문에, 아주 아주 복잡해서 쉽게 설명할 수 없고, 사랑스러운 면과 싫은 면이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내가 농협을 사랑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마치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안타까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 이민 가야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고개 돌리고 외면한다고 내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것도 아니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실향의 아픔에 사무칠 수밖에 없을 것을 번연히 알기 때문이다.
나도 안타깝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농협도 많은 사람의 관심에 죽을 맛일 게다. 그냥 알아서 사업하게 내버려 두면 좋으련만 많은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하며 참견을 한다. 국민은행에 대해서는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으면서 농협에 대해서는 왜 그리 관심이 많은지 부담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농협은 수백만 명의 조합원이 소유권을 나눠 갖고 있으며, 조합의 다양한 사업을 이용하고 있는 가지 많은 나무이며,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큰 조직이라서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는 랜드마크이자, 구체적인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협동조합의 안정적인 시스템을 가장 잘 정립한 선배 협동조합이다. 수많은 협동조합의 작은 배들이 떠 있는 바다에서 우뚝한 항공모함과 같다. 관심을 안 받을 수가 없고, 그 만큼 몸조심 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반대로 제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쉽게 농협을 이야기하지만, 또 쉽게 농협을 오해하기도 하고, 농협이 더 많은 역할을 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쉬웠다. 농협민주화니 농협개혁이니 하는 말들의 역사도 이미 40여년을 넘어서 있으니 오죽하랴. 임직원들은 그런 숱한 말들이나 행동들의 파도들에 이력이 붙어 어지간한 내외부의 움직임에 대해 심드렁하다. 농협개혁의 주장들도 이제는 으레 하는 이야기로 관성 화 되어 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내외부의 변화는 계속 축적되고 있는데, 농민조합원과 임직원들은 오히려 세상의 바깥에 놓인 듯 한가롭다.
외적 환경이 계속 바뀌어 나갈 때 내부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 안지 못하면 수동적으로 크게 터질 수밖에 없다. 일본농협 JA에 대한 아베 정권 내각부의 개혁안은 세세한 이유들을 제외하고 크게 보면 일본의 국민들이 농협보다 아베정부, 자본주의의 효율성에 대한 기대에 손을 들어 줄 것이라는 판단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농협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외부의 충격을 주기 위한 개혁논의는 사회적 비용을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실제 농민 조합원에게 실익을 주기란 쉽지 않다. 농협 내부에서 외부의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태세와 조직문화, 이를 이끌어 갈 지도자들의 역량이 동시에 정비되고 높아져야 한다.
내년 3월이면 농협조합장 총선거가 열린다. 2011년 개정된 농협법에 따라 전국 1,150여 회원농협에서 한꺼번에 조합장을 직선으로 뽑는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에 버금가는 협동조합참여의 공간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그 역사적 의의와는 달리 이를 준비하기 위한 농협 내외부의 논의나 활동은 현재로서는 쉽게 찾기 어렵다. 조합장이 되려는 사람들의 개별적인 움직임들만 보일 뿐 2015년 농협조합장 선거가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축제로 승화하고, 새로운 지도자들이 대거 등장하여 변화를 주동적으로 맞이할 전기가 될 수 있는 내용도 방향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2015년 농협조합장 선거가 단순한 이벤트에서 끝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하며, 동시에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연구소는 앞으로 1달 정도 준비하여 농협의 사업구조개편과 농협조합장 총선거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와 의견을 모으는 토론을 개최하려 한다. 농협을 사랑하면서 안타까워 하는 마음을 연구소가 할 수 있는 만큼 담아보려 한다. 많은 분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2014. 07. 15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김기태
농협은 협동조합이 아니다? - 사회적경제 주체로서 농협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
2014/05/02 14:09“농협이 협동조합이었어요?”
가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반응을 접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운 질문이지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농촌지역이 아닌 이상 NH농협은행의 통장만 개설하고 카드를 써보는 고객의 입장으로만 보면 농협이 협동조합인지 알기 어렵다. 또한 도시민이라면 당연히 가족 중에 조합원이 있을리도 만무하다. 조합원이나 관련자가 아닌 이상 일반인에게 굴지의 금융회사 유통회사로 인식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협동조합을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농협은 협동조합이 아니다’라고 부정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근래에 들어 사회적경제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가운데 사회적경제의 범주에 협동조합을 포함하면서 농협을 포함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반응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농협의 협동조합으로서 역할과 사회적기여에 만족스럽지 못한 점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검정씨가 안 보인다고 수박이 참외가 되랴? 이슈가 되는 현상의 문제점으로 본질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농협을 제대로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만약 농협들이 망한다면?
사회적경제의 주체로써 농협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농협이 협동조합이라서가 아니라 실제 지역에서의 역할과 기여를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농협들이 망한다면? 당장 농업인, 그리고 농촌에 사는 주민이 겪을 불편은 불 보듯 뻔하다. 농촌지역의 많은 농업인이 사고 팔고 하는 것과 관련하여 편한 거래 선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 자금을 마련하고 물건을 구매하는데 몇 리를 가서 이곳저곳을 들러야 일을 마칠 수 있다. 지역의 큰일과 마을의 경조사를 챙기는 것도 농협이고 주민의 다수인 조합원에게 복지지도사업을 하면서 행정기관에서 못 챙기는 부분을 대체하는 역할도 한다. 지역에서도 농협에 대한 비판이 항상 강조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공기 같은 존재’인 농협의 지역 기여에 대해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농협이 주민의 생활에서 차지하는 경제적 중요성, 지역주민이 이용하고 얻는 편익의 크기, 농촌지역의 주민의 대다수가 조합원으로 가입된 보편화된 조직인 것만으로도 이미 각 지역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공공의 성격을 지닌다. 또한 농촌주민에게 농협의 조합원이 되고 조합의 운영에 참여해본 경험은 익숙한 일로 협동을 도모하는 일에 더 잘 뭉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지역에서 새로운 협동조합들과 사회적경제의 주체들이 생겨나고 주민이 참여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농협이 뿌리를 잘 내린 지역은 사회적경제가 자라기 위한 좋은 토양을 가진 셈이고 농협이 사회적경제이 핵심주체로서 꼭 필요하다
앞으로 농협이 사회적경제의 주체로써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그동안의 기능과 역할에 묶여있지 말고 책임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한 발 더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각 지역의 현장에서 모범적인 사례를 많이 만들고 확산시켜야 한다. 실제로 이미 완주나 안성의 사례를 보면 농협이 사회적기업을 육성 및 지원하고 지역순환 사회경제의 구성에서 중요한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긍정적 성과를 내고 있다.
농촌지역의 경우 농협에 대한 역할의 요구는 더 많아 질 것으로 보인다. 지역자원의 연계, 로컬푸드 등 지역 주체가 중심이 되는 경제정책이 늘어나고 있으며, 주민의 금융 및 생활의 이용도가 높은 사업을 중심으로 지역 내 거래를 활성화하고 지역경제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역에서는 농협이 생산자협동조합이자 지역생활협동조합으로의 수요처 및 판매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새로운 협동조합들을 인큐베이팅 하는 신용협동조합으로서의 기능도 가능하다. 물적, 인적 자원이 부족한 농촌지역일수록 농협이 가진 풍부한 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며 다양한 주체간의 협력과 연대를 바탕으로 생태계를 구성하는데 농협의 중심적 역할이 필요하다.
사회적경제 주체로서 농협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
당사자인 농협의 조합원과 직원들도 농협이 지역에서 정말 필요한 존재이며 앞으로의 역할이 막중함을 자주 환기하고 조합원과 더 나아가 지역주민 전체의 삶의 문제와 직결된 일을 도모하는데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이며 전략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한다. 주민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가운데 농협도 더불어 영속될 수 있다.
농협을 배제하고 지역의 사회적경제 조직과 연대와 협력을 구성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같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각자의 소명을 다하도록 함께 이야기 하고 좋은 방안을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는 시점에서 농협이 선도한다면 박수로 환호하고 주저한다면 열심히 설득하자.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를 논하는 사람들은 농협의 참여에 용기를 북돋아 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맏형격인 농협이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2014. 04. 30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김원경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