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잘사는 방법, 농업인들에게 드리는 글

        -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 작물보호협회의 회보 “생활과 농약”에 기고한 글을 다시 전제합니다. 협동조합의 철학적 근거, 협동활동에 참여하는 개별 시민의 자세 등에 대해 고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글을 옮기는 것에 대해 양해바랍니다.


자기진단과 잘 사는 방법

“아침에 농장이나 직장으로 가기위해 차를 몰고 가다가 갑자기 옆 차선에서 차가 끼어들었다. 아슬아슬하게 비켜가 사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긴장한 것은 사실이다.”

자, 이런 상황을 만약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직접 겪었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을 할까? 주관식보다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4지선다 방식으로 자신의 반응을 찾아보면 좋겠다.

1번, “저, ×××! 죽××어 ××을 했나! ××! 콰악 퉤” 텔레비전에서 삐- 소리 나는 것처럼 실감나게 상상해 보자. 이 상상이 잘 될수록 독자는 1번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일 수 있다.

2번, “무슨 운전을 저 따위로 하는 거야? 나쁜 ××” 이러면서 종주먹질을 하거나, 클렉션을 빵빵 댈지도 모른다.

3번, “아휴, 큰일 날뻔했네. 오늘은 운이 좋은가봐?” 이미 사고의 순간은 지나갔고, 현재 자신의 긍정적인 사실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사람이 선택할 답이다.

4번, “어허, 저 사람, 엄청 바쁜가 보지. 저렇게 운전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을 텐데. 큰 일이 안 생겨야 할 텐데” 상대방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던 사람을 걱정하기도 한다. 부처님 가운데토막이라고 할까?

이 질문의 정답은 당연히 없다. 도덕교과서에도 이런 문제는 안 나온다.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 속에 당신만의 답이 있다. 물론 1번보다 3번이나 4번을 선택한 독자가 훨씬 더 교양인 같다고 말할 수 있지만, 직접 목숨이 왔다갔다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마음을 잘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에게 교양 있게 보이는 사람이 직접 개인 생활에서는 일반적인 사람보다 훨씬 이기적이고 도덕불감증에 사로잡힌 모습을 종종 보일 때 더 그렇다.

당신만의 정답을 정하셨는가? 그렇다면 조금 더 깊게 문제에 들어가 보자. 똑같은 당신이라도 만약 오늘 아침 차를 몰고 나오기 전에 아내와 토닥거렸는지 아닌지에 따라, 어제 어떤 일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아닌지에 따라 당신의 답이 달라질 수 있다.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을 때는 3번이라고 평소에 말하는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고 아내와 사이가 안 좋은 하루라면 2번이나 1번을 말할 수도 있다. 이때는 오늘은 그렇다 하더라도 개인의 노력으로 일을 잘 처리하여 내일부터 다시 화창한 마음으로 돌아오면 된다. 그러면 2번의 답은 3번으로 바뀔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좀 더 넓혀져야 한다. “당신이 만약 위의 상황을 10번 정도 겪었다고 하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답은 무엇입니까?”

다시 곰곰이 생각해서 당신만의 답을 선택하셨는가? 하지만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자, 당신의 스트레스가 단순히 개인적인 일이나 문제 때문에 나타나는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농산물가격은 낮게 억제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현재의 농산물가격으로는 지금 나를 괴롭히는 농가부채 상환이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런 생각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지만 아직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완전히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 차가 급하게 당신의 앞으로 끼어들 때 튀어 나오는 반응에는 ‘현재 당신의 생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만약 사고가 발생할 뻔한 그 장소가 원래 커브가 있어 뒤에서 오는 차가 잘 보이지 않는 곳인데도 길옆에 체육시설이 있거나 약수터가 있어 다른 사람들도 자주 이런 일을 당하는 곳이라면 어떤가? 이건 개인의 반응 문제가 아니게 된다.

위에서 제시한 상황은 아주 간단한 것일지 모르지만, 그 상황에 대한 반응과 잇따른 질문은 사실 진정으로 잘 사는 방법을 탐색할 때 반드시 따져 봐야 할 개인과 사회가 처한 여건이란 객체적 조건과 이런 여건에 반응하는 개인의 태도, 자세라는 주체적 조건을 두루 다룬 것이다.


농업, 농촌의 현실과 속 터지는 여건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농업과 농촌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어려워졌다. 농업과 농촌이 어렵다는 사실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수치는 농업인의 감소다. 작년 말 드디어 300만 명 미만으로 농가인구가 줄어들었다. 고령화로 인해 돌아가시는 분들은 많은데 그만큼 젊은 사람들이 농업에 들어오지 않으니 갈수록 농가인구가 주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농업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도시의 생활이나 다른 직업에 비해 전망이 보이지 않고 희망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건을 주로 결정하는 농식품 시장과 정책도 마치 사고가 나기 쉬운 도로처럼 농업인에게 불안감을 준다. 기후변화에 따라 작황은 들쭉날쭉 한데 풍년이 들어 농산물가격이 떨어질 때는 소 닭 보듯 하며 시장원리를 되뇌던 정책당국은 흉년이 들어 농산물가격이 오르기만 하면 갑자기 시장원리는 쑥 들어가고 ‘물가안정’이란 구호를 외치며 농협의 수매가격에 은근히 훈수를 두고 긴급수입 등으로 엄포를 놓는다. 농민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 지 모르게 된다.

갈수록 국제유가는 올라 시설원예의 생산비는 높아지고, 오르는 국제유가를 따라 온갖 원자재 가격은 다 오르는데 농산물가격은 제자리인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한미, 한중 등 FTA협상들이 갑자기 끼어들어 가슴을 철렁철렁하게 만든다.

소농인 농민들은 경제적 약자다. 따라서 이런 커다란 사회적 여건들의 변화에 개별적으로 대처해서 성공하기란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이런 소농들의 입장을 경제적으로 대변하라고 만드는 것이 농업협동조합인데, 제 역할을 하기보다는 비료가격 담합이니 하며 제 잇속만 차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농업, 농촌의 현실과 변화하는 여건

그렇지만 이런 위기 상황은 또 다른 측면에서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석유가격의 상승은 옥수수를 바이오원료로 사용되도록 만들어 국제가격을 끌어올린다. 밀 가격이 두 배 이상 높아져 우리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 옥수수 가격의 상승은 국제 쌀값에도 영향을 미쳐 품질로만 따지면 나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중국의 경제발전도 장기적으로는 중국 내부의 식량수요를 확대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외국에서 대규모로 식량을 구매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체적인 공급량확대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중국경제가 성장할수록 국제곡물가가 올라가고 중국 농산물의 가격이 올라가서 우리나라 농업에 대한 위협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다.

농민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이면에는 고령농가가 많이 있다. 고령농가들은 도시에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겠지만, 농촌에서는 나름 할 일을 묵묵히 하면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고령농가를 제외하고 60세 이하로 따져보면 그래도 도시근로자가구의 평균소득보다 많은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물론 농업생산을 영위하는 투자비용을 따지면 여전히 농업이 도시의 직장생활보다는 돈벌이가 덜 되지만 이것도 도시의 비싼 집값을 감안하면 비슷할 것이다.

농촌이 비어가고 농가인구가 줄어들면 단기적인 정치적 영향력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농업과 농촌의 중요성을 사회가 합의한다면 국가가 평균적으로 농업인에 대해 지원할 수 있는 여유는 더 커질 수 있다. 지금 유럽의 농업정책이 이미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단순히 농업경영에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과 지역을 유지해주는 농업인의 삶에 대한 지원을 하는 것이다.

농협도 이제 농업의 어려움 속에서 신용사업이 수익만으로 경영하기 어렵게 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조합원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가가 지역농협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므로 농민조합원들이 얼마나 한 목소리를 내는가가 중요해져 가고 있다.

작년 말에 협동조합기본법이 만들어지면서 누구나 쉽게 협동조합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도록 되었다. 2차 산업과 3차 산업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많은 국민이 협동조합의 가치를 이해할수록 도시와 농촌의 상호협력이 말 뿐이 아니라 다양한 사업으로 엮일 것이다.

최근 경제불황으로 인해 귀농귀촌이 늘고 있다. 농업인과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과 전혀 별개로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농촌과 농업을 새로운 희망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과 농업이 희망이란 바람이 사실이든 아니든 최소한 극심한 경쟁과 취업전쟁, 구조조정의 위협에 시달리는 도시민들에게 농촌과 농업은 다른 삶의 방식으로 떠오르는 것은 인정해야 하겠다.


긍정적 에너지를 만드는 태도와 자세

이렇게 여건이 우호적인 요소도 있고, 부정적인 요소도 있다고 하면 양비론이나 양시론이라고 오해할 수 있어 부득이 좀 어려운 이야기를 해야겠다. 잘 사는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개인은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철학’을 통해 객체적인 여건을 긍정적으로 주체의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한다.

내가 당장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여건이란 단순하게 한 가지 방식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차원으로 존재한다. 아주 가깝게는 내 속에서 났으면서도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식’이란 존재에서부터 길게는 국가정책과 국제유가, 국제금융시스템 등 쉽게 떠올리기도 힘든 영역까지 다양하다. 쉽게 보기에는 고치기 어렵다는 이런 큰 여건도 바뀌어 질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현재의 크고 작은 여건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 혹은 그런 개인의 협력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부정적 철학’이다. 이 믿음이 단지 허황된 환상이 아니기 위해서는 그 여건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이런 여건을 변화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체는 에너지를 가져야 한다. 이런 에너지는 지금 당장 자신이 고칠 수 있는 것들을 성공적으로 고쳐나가면서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며, 변화를 시켜내는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을 자랑하는 ‘자긍심’을 갖는 것이다. 이런 자신감과 자긍심으로 세상을 보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태도와 자세를 ‘긍정적 사고’라고 한다.


농업인이 농촌과 농업으로 진정 잘 사는 법

적정하면서 안정적인 소득은 잘 사는 필요조건이다. 여기에 도시에서는 쉽게 누리지 못하는 자연의 소리와 냄새와 촉감을 듣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소득만으로 농촌의 삶을 말하려는 사람에게 농업은 단지 ‘너무 느린 공업’, ‘돈 안되는 공업’에 지나지 않는다. 농업에 대한 철학이 부족한 것이다. 농업과 농촌에 대한 자긍심과 자신만의 철학이 없이는 아무리 해도 잘 산다하기에는 부족하다. 자연과 친화적으로 사는 방법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그래야 농촌관광을 찾아오는 도시민들도 감화를 받고, 농업과 농촌에 대해 우호적으로 된다. 여건을 바꾸는 작은 실천을 부지불식간에 하는 것이다.

농산물가격의 불안정이나 수입개방으로 이런 여건이 파괴되어 어쩔 수 없다고? 모든 것이 수입개방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변화의 방향을 착실히 생각하고, 자신이 올바르다고 하는 일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스스로를 괴롭히고 파괴하는 것보다는 훨씬 잘 사는 길을 만드는 첫걸음이다.
2012/05/22 09:54 2012/05/2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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