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재벌들은 영리병원 도입을 원하는가 보다. 외국인 투자 유치, 경제자유구역의 활성화, 경쟁을 통한 의료서비스 확대 등의 이유를 들며 영리병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 달에 두어 번 중앙일간지에 실리면서 어떻게든 불씨를 살리려고 하지만 그다지 국민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고 있다. 영리병원의 도입은 그 방식에 따라 국민건강보험의 체계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쟁점인데도 불구하고 왜 국민들은 크게 관심을 가지지 못할까? 전문적인 쟁점들이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복잡하고 어렵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비영리병원’이란 게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원래 병원은 영리를 추구하는데 무슨 말이야?”라는 뜨악한 시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의료전문언론에서도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구분은 영리 추구행위 자체가 아니라 병원의 영업으로 얻은 이익을 배당하느냐 여부인 셈이다… 의료기관 비영리화가 국내 의료체계의 근간이긴 하지만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56%(1천117곳)인 개인병원과 소규모 의원급 의료기관(2만7천여 곳)의 대부분이 사실상 영리병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개인이 소유한 병·의원은 이윤이 개인(병원장)에게 최종적으로 귀속되기 때문에 이윤의 용처는 개인의 판단에 따르기 때문이다”라며 기존의 의료기관 대부분을 영리병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데일리메디, 2011.10.01.“‘뜨거운 감자’ 영리병원이란” 기사에서 발췌)
우리나라에서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과 달리 사업을 수행하는 비영리법인으로는 크게 ‘의료법인’, ‘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을 들 수 있다. 의료법인은 앞에서 본 것과 같고, 학교법인도 최근 반값등록금 문제에서 보듯이 실질적으로 영리기업과 다른 점이 없으며, 사회복지법인도 역시 영화 ‘도가니’ 사태에서 드러나듯 설립자나 운영자의 영리추구활동의 일환으로 치부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아픈 현실이라 하겠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협동조합은 비영리법인”이라고 말하면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의문이 던져진다. 일반적인 질문은 “협동조합도 이윤을 추구하고, 실제 이윤이 나오지 않느냐?”이다. 법적으로 공부를 한 사람들은 “비영리법인은 출자배당이 없는데 협동조합은 있지 않느냐?”라고 질문한다.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변과 그 답변의 사회적 이해수준이 협동조합기본법의 조문을 구체적으로 작성할 때 비영리법인격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우선 비영리법인의 성격에 대한 네 가지 접근법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첫째 사업 자체가 사회적 혹은 공익적 성격을 지니는가 아닌가, 둘째 사업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가 아닌가, 셋째 이윤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넷째 출자배당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로 나눠서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적 상식으로 볼 때 비영리법인은 앞서 이야기한 것 중 세 번째 접근법인 이윤의 처리여부에 집중되어 있다. 앞의 기사를 다시 인용해 보면 “비영리병원은 영리병원처럼 수익사업으로 돈을 벌지만 잉여금이 생기면 어떤 경우에도 배당을 해선 안 되고 인건비, 시설투자, 연구비 등 병원의 설립목적에 맞도록 써야 한다는 점에서 영리병원과 구분된다.”며 배당을 해서는 안 되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위에서 제시한 관점의 순서대로 접근하지 않으면 비영리법인은 자칫 절세의 도구나 특수이해관계자들의 잔칫상 정도로 이해될 수 있다. 실제 작은 학교법인의 경우 이사회의 과반수를 특수이해관계자로 교체시켜주는 대가로 서로 사고파는 행위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협동조합이 비영리법인인지를 따지는 첫째 관문은 협동조합의 사업이 사회적 혹은 공익적 성격을 지니는가의 여부이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이 관문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데, 문제는 농협이나 수협 등 생산자협동조합과 노동자협동조합이고 이에 대한 추가설명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생산자협동조합과 노동자협동조합의 사업도 사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소생산자나 근로자들이 연대하여 협동조합을 만들어 유통자본과 대항하는 것은 물가안정과 경제적 약자에게 돌아올 몫을 늘려 내수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특히 협동조합은 소규모경제에 주로 많기 때문에 이런 영역의 사업이 발전되는 것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된다. 유럽의 많은 협동조합 선진사례를 볼 때도 그렇고, 우리나라 농협이 지역에서 기여하는 바를 볼 때도 그렇다.
두 번째 관문은 사업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지 여부이다. 협동조합경제학에서 협동조합의 최적생산점을 파악할 때 협동조합기업 자체의 손익극대화 지점이 아니라 조합원 전체의 소득최고점을 생산지점을 상정한다. 즉 협동조합은 조직 자체의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조합원들의 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협동조합은 비영리적 성격을 지닌다.
세 번째 관문은 현실적으로 당기순익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다. 구체적으로 보면 두 가지 쟁점이 결합되어 있는데 당기순이익의 배당과 해산 시 잔여재산의 처분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의료생협의 경우에는 출자배당이 없도록 정관에 정했고, 해산 후 대출과 출자금을 상환한 후 잔여재산을 사회적으로 환원한다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의료생협처럼 정관을 정하면 당연히 ‘비영리법인’의 성격을 가진다. 이 경우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에 협동조합의 비영리성은 일반적인 학교법인이나 의료법인보다 더욱 높은 수준을 자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협동조합의 경우도 있기 때문에 좀 더 많은 검토가 있어야 한다. 이 때 당기순익의 배당을 만약 ‘이용액 배당(혹은 노동배당)’으로만 배분할 경우에는 두 번째와 연계되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출자배당을 하는 협동조합의 경우에는 네 번째 문제와 연계된다.
네 번째 관문은 만약 출자배당을 할 경우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다. 일반적인 영리법인에 투자할 경우 배당의 수익률은 한도가 없다. 하지만 협동조합은 출자배당을 하더라도 두 가지 제약을 두고 있다. 첫 번째는 출자배당률에 대한 제한이다. 대부분의 협동조합은 ‘정기예금금리 이내’ 혹은 ‘정기예금금리+2%(농협)’로 출자배당률을 제한하고 있다. 이는 출자배당을 일종의 ‘이자’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영리법인과 달리 조합원의 출자금은 협동조합에 장기적으로 빌려주는 자금이며, 그 이자를 받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산재평가 수익이 조합원에게 귀속되지 않는다는 협동조합 회계의 원칙이다. 이는 물가상승률만큼 조합원의 출자금은 실질적인 평가액이 줄어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때 이자의 성격을 가진 출자배당은 단순한 실질평가액의 감소에 대한 보상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이상의 네 가지 접근법을 고려하면 협동조합은 세 번째 접근법에 적합하게 정관을 제정한 강한 공익적 성격의 협동조합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렇지 않은 어떤 협동조합이라도 현재 일반적으로 국민들이 이해하는 ‘비영리법인’보다 더 비영리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협동조합은 비영리법인이라는 점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협동조합에 참여하는 조합원과 임직원 모두에게 큰 자긍심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1. 10. 1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소장 김기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