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지도자들 중에는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조합원들에게 사랑받는 사람들이 많다. 캐나다 신용협동조합의 아버지 ‘데자르뎅’이나 스페인 몬드라곤의 창립자 ‘호세 마리아’ 신부는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존경받고 있다.

농업·농촌 현장을 일터로 삼아야

스위스 소매유통의 30%를 점유하고 있는 소비자협동조합 미그로를 창립한 ‘고트리프 두트바일러’ 회장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스위스 위인 중 2위로 선정됐다. 스위스 국민들이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협동조합지도자다.

우리나라 농협은 1945년 이후 해방된 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양적, 질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한 성과를 갖고 있는 반면, 농민조합원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고 오히려 중앙회장의 일신의 영달을 위해 농민조합원의 힘을 이용하거나, 정부정책에 순응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총자산 400조원 규모에 농산물 산지유통 점유율이 50%에 가깝고, 대부분의 조합원이 농협의 조합원을 탈퇴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농협에서 60여년의 세월동안 조합원 모두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지도자를 한 사람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오는 12일 농협중앙회장을 선출하게 된다. 이번에 선출되는 중앙회장은 농민조합원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최초의 협동조합 지도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랑과 존경을 받는 협동조합지도자에게는 몇 가지 덕목이 있다.

첫째, 중앙회장은 농업·농촌의 현장을 자신의 일터로 삼아야 한다. 중앙회장이 되면 가장 먼저 중앙회 직원들의 장막에, 그 다음으로는 조합장들의 장막에 둘러싸일 수밖에 없다. 거대 협동조합인 농협중앙회인 만큼 각각의 사안마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흘러들고, 행사니 의전이니 따지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농업·농촌의 현장에서 멀어져버리게 돼있다. 하지만 비상임 중앙회장은 농민조합원의 구체적인 삶과 마음자리를 잘 살피는 일이 가장 앞서야 한다.


조합원·조합장 총의 모으는 책임자

뉴질랜드 키위협동조합의 자회사, 제스프리 인터내셔널의 대표는 1년의 절반을 조합원 지역모임에 참여해 방침을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임무를 지고 있다. 조합원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떠난다. 마찬가지로 농민조합원과 자주 만날수록, 이중의 장막에 갇히지 않고 조합원들의 눈과 심정으로 중앙회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 농협의 구호로 전국에 울러 퍼졌던 항재농장(恒在農場)의 모범을 신임 중앙회장이 몸소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둘째, 중앙회장은 농협의 장기발전계획을 농민조합원과 조합장의 총의를 모아 만드는 책임자여야 한다. 비상임 중앙회장은 한두 가지 사업의 성과를 갖고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농업·농촌과 농협의 10년 뒤 비전을 정하고, 농협이란 거대한 항공모함의 항로를 크게 결정하는 일을 해야 한다. 비전 만들기는 몇몇 전문가들의 손에 맡길 일이 아니다. 일선조합마다 농업내외의 변화 전망, 협동조합의 가치와 역할 등을 조합원에게 광범위하게 알리고, 조합원의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일선조합의 발전계획을 모아 전국적 차원에서 한 단계 높은 농협의 비전을 만들어 나가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충실히 이행하는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이 수반되는 일이지만, 이를 감수하면서도 100년 가는 농협의 초석을 놓는 지도자를 우리는 보고 싶다.

셋째, 중앙회장은 230만 농민조합원의 대표자로서 농민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데 분투하는 운동가여야 한다.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당시 1000만인 서명운동에 동참해 쌀시장 개방 유예의 성과를 이끌어낸 농협을 농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농업에 불리한 정책이 수립될 때 반박하는 의견을 강력히 제시하는 중앙회장이길 바란다. 농산물가격이 폭락했을 때, 큰 재해가 닥쳤을 때 현장에서 함께 눈물 흘리는 중앙회장을 보고 싶다.


농민 위한 정책 수립 운동가 돼야

출마한 중앙회장 후보의 공약을 보면 이런 덕목에 비춰 아쉬움이 크다. 조합장의 처우개선에 너무 많은 공약을 내걸고 있는가 하면, 수년간의 합의를 통해 정리된 농협사업구조개선의 성과를 뒤로 돌리려는 실현하기 어려운 공약도 있다. 조합에게 무이자자금을 더 많이 제공하겠다며 자율과 독립이라는 협동조합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공약을 걸고 있는 후보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농민조합원으로부터 존경받는 최초의 중앙회장이 되기 위한 큰 발심을 하길 기대한다. 농민조합원과 조합장들의 진지한 평가의 눈과 입이 지금 더욱 필요하다.

(사)한국협동조합연구소 김기태 소장
2016/01/08 16:31 2016/01/0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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