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집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던 11월 마지막 날. 정적을 깨뜨리는 전화벨이 울렸다. 시골에 있는 동네 형님에게서 온 전화이다.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인사도 없이 대뜸 세종증권 이야기 먼저 꺼낸다. 농협중앙회가 세종증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이 청탁과 함께 거액의 금품을 받았다는 이미 언론에 다 보도된 내용을 녹음기를 틀어논 듯 거침없이 쏟아낸다. 이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 되묻기도 하고 지금 시골은 얼마나 어려운데 아직도 그런 행태를 버리지 못한 농협을 이참에 확실히 손봐줘야(?)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세간에 세종증권 인수로비 사건이 핫 이슈다. 사건이 터진지 벌써 15여일이 지났지만 오히려 파문은 점점 더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1988년 이후 역대 민선 농협중앙회장이 지금까지 4명이 배출됐으나 최원병 현 회장을 제외한 1~3대 회장이 줄줄이 비리에 연루되어 사법처리됐다. 정대근 전 회장은 이미 2005년말 농협 하나로마트 터를 현대자동차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현대차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로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세종캐피탈 대표로부터 50억원을 받은 혐의까지 나왔으니 점입가경이다. 다시 한번 농협은 농민들의 아픈 가슴에 대못질을 한 것이다.

참여정부 손보기라는 정치적 공방은 제쳐두고, 정대근 회장의 개인 비리라는 농협의 항변을 떠나, 이 문제의 핵심은 농협중앙회 지배구조임을 직시해야 한다. 농협이 대형비리에 쉽게 허물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중앙회장을 견제, 감시할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농협중앙회장의 비리가 터질때마다 중앙회장의 권한을 축소하자는 논의가 있어왔다. 2005년 농협법을 개정하면서 중앙회장을 상임에서 비상임으로 바꾸고 대표이사의 권한을 강화했다. 그러나 회장의 권한은 축소되지 않았다. 현행법상 중앙회장은 대표이사 추천 및 임명권, 대표이사간 업무조정권, 감사위원 후보 추천권 등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다. 회장 임기는 4년인데 대표이사 임기는 2년이어서 연임을 하려면 회장의 의중에 따를 수밖에 없다.  중앙회의 지원을 받는 회원조합의 조합장들도 중앙회장의 뜻을 거스르기 어렵다.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는 중앙회장의 비리가 언제든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농협의 지배구조부터 과감히 뜯어고쳐야 하는 것이다. 

그 출발은 바로 농협 자신이다. 비리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서는 농협 스스로가 환골탈태해야 한다. 농협 자체적으로 투명경영체제 구축을 위해 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개혁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주무부서인 농림수산식품부도 이제라도 농협의 절대권력 구조에 제대로 메스를 대야 한다. 농식품부는 이번 농협법 개정과정에서 현재 농협중앙회장에게 부여된 임원 인사추천권을 인사추천위원회를 신설해 이관하기로 한 당초 방침을 철회했다. 이번 농협법 개정안이 농협개혁의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농민 조합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진정한 농협개혁이 이뤄지는 농협법 개정을 이끌어내는 일이 농협이 진정 농민을 위한 조직으로 변신할 수 있는 척도임을 알아야 한다.
2009/05/14 12:30 2009/05/1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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