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바야흐로 협동조합 전성시대다. 20137월말 현재 2,039개의 협동조합 및 연합회가 신고 수리 혹은 인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업·농촌 분야만 놓고 보더라도 지역 먹거리(로컬푸드)를 활용한 직판장 개설, 한우 정육점 식당 운영, 꾸러미 농산물 사업, 농어촌 복지 등을 것들을 담당하는 협동조합이 다수 결성·운영되고 있다. 기존 농업법인(영농조합법인, 농업회사법인)에 비해 정부의 정책 지원이 다소간 부족한 상황에서 농어업·농어촌 분야의 협동조합이 활성화될 수 있겠냐는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미 농업·농촌에는 1961년 출범한 농협이 50여년 넘게 자리잡고 있다. 1,150여개의 농협(지역농협, 지역축협, 전문농협 등)들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수행하는 종합 협동조합으로서, 농촌사회·경제에 가장 영향력이 큰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들 농협들의 연합체인 농협중앙회는 국내 수위권의 금융회사(농협금융지주)와 농축산물 유통회사(농협경제지주)를 거느린 협동조합 그룹으로서, 2012년 개정 농협법에 의한 사업구조 개편을 통하여 새로운 발전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농협이 농업
·농촌 분야에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협동조합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성 및 아이디어를 공유·모색해보고자 한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제도적 여건 및 국내외 경제 상황에 대응하여, 농협 스스로가 협동조합 운동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국내 협동조합 진영의 진정한 맏형으로서 협동조합간 협동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어나가야 할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고 있음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농업·농촌 분야 신규 협동조합 운동의 폭발적 확장을 초래한 원인과 농협

 

1961년 종합농협 출범 이후 농협은 정부의 배타적인 지원·지지를 업고 안정적인 성장과 발전을 보장받아 왔다. , 주곡() 자급을 달성하려는 정부 정책을 원활히 추진하고자 종자·비료·농약 등 농자재의 원활한 공급, 고리채 해소를 위한 상호금융 및 정책자금 대출, 정부 추곡수매 정책의 대행자로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농업의 근대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은 물론 농산업 분야 전반의 발전, 국민 식생활의 개선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농협의 내외부 여건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983년 가락시장 개장, 2000년대 초반 대형유통업체의 본격 진출, 추곡수매제 폐지 이후 공공비축제 시행 등 일련의 굵직한 사건들을 분석해 보면, 정부 농업정책의 기조가 직접적인 시장 개입 방식에서 벗어나 시장중심적인 방향으로 이행함은 물론이거니와, 농협에 대한 정부의 배타적인 지지·지원 정책의 실질적인 종언(終焉)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한 상업적 영농의 확산
, WTO·FTA 등 농업 개방 확대, 정부 농업보호정책 기조 변경 등의 여건 변화에 적절한 대응이 절실했음에도, 농협의 혁신 시도는 느렸으며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농협이 주도하는 지역농업의 조직화·전문화, 출하 단위의 규모화를 통한 시장 대응력 강화는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반면, 상대적으로 쉬운 신용사업에 집중하면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조합원을 대상으로 돈 장사에만 치중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현상과 관련한 농민들의 반발 심리가 결국 농업·농촌 분야 협동조합의 활발한 결성·운영을 초래한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영농조합법인
·농업회사법인과 같은 수준으로 정부 농림사업 지원 자격을 갖지 못하고 있는 농업·농촌 분야 협동조합의 상황, 신용사업을 겸영하는 농협과는 달리 적기에 충분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여건 등을 감안할 때, 새로 만들어지는 농업·농촌 분야 협동조합이 농협과 정면 승부를 벌이기는 매우 어렵지 않느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금융·보험(공제)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협동조합은 신용협동조합법에 의한 농··축협 및 신협·새마을금고로 한정된 상황에서, 이들 선배 협동조합의 지원과 협조 없이는 새로운 농업·농촌 분야 협동조합의 성공적인 정착과 활성화가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 조건도 무시할 수 없다.

 

농업·농촌 분야의 협동조합 생태계 구축을 위해 농협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990년대 초중반 영농조합법인·농업회사법인의 설립 붐이 일었을 때 농협은 자신의 강력한 경쟁자로서 이들을 대했을 뿐, 이들의 건설적인 성장을 추동·지원하여 한국 농업의 구조를 발전시켜야 하는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 영농조합법인·농업회사법인의 경영을 방해하고 발전을 가로막기도 한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결국 김영삼 정부 당시 추진된 농업법인 활성화 정책은 IMF 외환위기 속에서 총체적인 실패로 귀결되었다.


위의 전철을 되밟으면서
, 농협은 자신의 기득권 수호에만 매달릴 것인가? 그리하여 우리 농업·농촌의 근본적 혁신을 바라는 밑으로부터의 자발적인 움직임을 수포로 만들 것인가? 이제부터가 중요한 농협의 몫이라 생각된다. 50년이 넘도록 농협이 보유하고 발전시켜 온 다양한 자산과 노하우를 제공하고, 새로운 농업·농촌 분야 협동조합의 강력한 인큐베이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할 때가 왔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같이 실질적인 협동조합간의 협동을 농협이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한다면, 농협은 협동조합 진영은 물론 전 국민들로부터 단순히 정부가 시키는대로 정책자금이나 빌려주고 마는 은행정도로만 평가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는 결국 우리나라 협동조합 운동의 양적·질적 도약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새로 만들어지는 농업
·농촌 분야 협동조합과 경합·방해되는 사업에 농협 스스로가 진출하지 않고 자제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실제 일부 지역농협들이 농민 스스로 어렵사리 만든 로컬푸드 직매장 인근에 이와 유사한 농산물 판매 점포를 만들어 원성을 사는 경우도 언론 보도를 통해 종종 접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존 농협과 농업·농촌 분야 신규 협동조합간에 절실한 기초적인 신뢰 관계마저 구축될 가능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농협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그로 인한 소모적 대립·갈등 구도만이 공고해지게 될 것이다.


농협과 농업
·농촌 분야 협동조합간의 올바른 역할 분담과 협조 체제의 구축은 현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라 판단된다. 한국협동조합연구소 김기태 소장은 농업·농촌 신규 협동조합들이 농촌지역 사회의 재생 농촌주민의 경제활동 활성화 농촌자원을 이용한 수익 모델 창출 고령자·유아 등 취약계층 복지 서비스 제공의 관점에서, 기존 농협이나 정부(지자체), 민간 기업들이 수행하지 못했던 틈새시장에 어떻게 진출하여 사업성과를 거둘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틈새시장은 농업·농촌 신규 협동조합의 노력만으로는 창출되기 어려우며, 정부(지자체)와 농협 등의 제도적 지원과 재원 확보를 통해서 공적 혹은 민간 시장을 적극 창출해야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농협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 안성시 고삼농협과 같이 조합원이 참여하는 사회적기업을 설립·육성했던 것처럼 직접적인 지원을 할 수도 있고, 대도시 농협 하나로클럽이나 지역농협의 하나로마트에 농업·농촌 분야 협동조합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전용 판매 코너를 마련해 주는 등 신규 판로 확보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농촌 지역의 경종
·축산 부문의 생산 농가들을 조직화·규모화하는 방식을 협동조합적 형태로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들녘별 경영체(), 공선출하회(청과류), 농기계 공동이용조직 등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법인화하여, 이들 협동조합들이 농협과의 긴밀한 업무 협력 관계를 만드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농민조합원과 농협 양자간의 계약을 성실히 이행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함으로써, 계약재배나 수탁판매의 성과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신규 협동조합의 안정적인 성장
·발전에 필수적인 자금 지원과 관련하여 농협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협동조합기본법상 금융·보험(공제) 분야의 신규 협동조합 설립이 금지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그룹의 노동인민금고와 유사한 방식으로, 농협이 나서서 다양한 분야의 교육·컨설팅(기술·재무·금융·마케팅 등)과 연계하여 저리의 농업금융 서비스(상호금융, 정책자금)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농신보)을 활용하여 이들 협동조합이 보유한 유·무형자산(기술력, 영업력 등)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여, 적기에 저리의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신용보증을 해 주는 방법 또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협동조합 진영의 맏형인 농협이 얼마나 적극적
·능동적으로 움직이느냐에 농업·농촌 분야는 물론 전체 협동조합들의 활성화가 좌우될 것이다. 아무쪼록 농협이 건설적이고 진취적인 역할을 통하여 협동조합다운 협동조합’, ‘같이의 가치를 구현하는 협동조합으로서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협동조합 진영 전체의 신뢰는 물론 국민 모두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손재범 /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

2013/09/06 14:11 2013/09/0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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