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손에서 조합원의 품으로…‘진짜 협동조합’을 만들자

전국에 농협은 1012개, 축협 142개, 산림조합 142개, 수협 92개, 인삼협 12개 등 농어민을 위해 설립된 조합은 약 1400곳에 달한다. 그러나 농어민들은 중앙회는 물론 조합들이 제 역할을 못한다며 불만이 높다. 상당수 조합들이 경제사업은 소홀히 하고 신용사업에만 매진하는가 하면 일부 조합들은 직원을 위한 조합으로 변하고 있다. 농민들은 농협과 수협, 산림조합들이 제 역할만 해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해야 협동조합이 조합원의 것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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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조합원이 조합 경영에 적극 참여해야 임직원들을 위한 조합이 아닌 조합원들의 품에 협동조합이 들어올 수 있다. 사진은 일선 조합이 벼 수매를 하고 있는 모습.

▲생각의 틀을 바꾸자=A축협의 한 감사는 2년 전 조합에서 해임을 당했다. 조합 사업에 대해 잘못된 부분을 느껴 문제를 제기하고 자료요청을 하자 조합에서 조합원 자격을 들먹이며 해임시킨 것이다. 해당 감사는 “조합장과 반대되는 의견을 제기하는 임원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이 감사는 농협을 운영하는데 있어 원칙을 갖고 접근했지만 조합장과 직원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결국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해임됐다. 이런 일은 전국적으로 비일비재하다. 조합과 조합 임원 간에 소송이 진행되는 것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조합원들이 조합 운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 이런 일이 시작됐다고 강조한다. 조합원들이 조합의 경영을 모르니 조합장과 조합의 임직원들이 제멋대로 또는 자신들에게 유리한대로 조합을 끌고 나간다는 것. 그 과정에서 정작 조합의 주인인 조합원들은 배제되는 일이 많다. B조합의 한 임원은 “조합원들은 오직 연말에 받을 선물과 배당금액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조합원들이 얼마나 일선조합과 중앙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참여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괴산 불정농협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1년 불정농협 결산총회 때 임기가 끝나 사퇴하는 김수영 감사는 “임원으로서 행복했었다. 우리 농협은 좋은 농협”이라고 말했고 대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런 상황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2005년 취임한 남무현 조합장을 비롯해 조합 임원들과 조합원들이 적극적으로 조합 경영에 나섰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협동조합연구모임을 결성해 2004년부터 매월 1일, 11일, 21일마다 모여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농민 조합원 스스로가 협동조합의 이론과 목표를 자각하고 조합 경영에 직접 참여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조합원 스스로 준비해왔다. 연구모임에 참여했던 농민 조합원들이 대의원과 이·감사를 맡게 되면서 조합운영이 경영진 중심에서 조합원 중심으로 바뀌었다.

다른 조합의 대의원총회에서는 직원들이 발언할 기회가 많지만 불정농협에서는 말을 할 수 없다. 총회에서 대의원들이 논의해 결정하면 직원들은 집행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조합의 경영을 투명하게 공개한 남무현 조합장은 “총회에 참여한 대의원들은 보통 직원들의 요구대로 사업계획이나 예산을 통과시킨다”며 “조합의 경영이 공개되지 않으면 의사결정은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고 직원들의 컨셉이냐 농민 조합원의 컨셉이냐에 따라 방향은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우리가 함께 공부했던 것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면서 “투명하게 공개해 조합원들이 조합에 신뢰를 갖고 조합이 우리의 것이라고 인식해 참여하면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남무현 조합장의 경영능력과 조합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시너지 효과를 보이면서 불정농협은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조합으로 성장했다. 불정농협의 경제사업규모는 2012년 311억원으로 남 조합장 취임 전인 2004년(164억원) 보다 무려 89.6% 증가했다. 판매사업도 2004년 120억원 보다 81억원 신장한 201억원에 달하고 구매사업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특히 판매사업의 경우 2004년까지는 대부분 수탁사업이거나 추곡수매 같은 정부수매를 대행했지만 지난해 자체판매사업이 145억원으로 전체 판매사업의 72%를 차지할 만큼 성장했다. 또 불정농협의 콩 판매가격은 국산 콩 시장에서 사실상 기준가격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 생산량의 2.4%에 불과하지만 꼼꼼한 선별과 단일품종, 대규모 물량공급을 통해 가격을 주도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조합원들 스스로 협동조합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는 것을 바탕으로 조합장과 이·감사, 대의원 등을 조합에 필요한 인물로 뽑을 때 조합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이렇게 선출된 조합장은 중앙회의 대의원, 이사 등으로 선출돼도 믿고 맡길 수 있다. 약 2년 앞으로 다가온 2015년 전국 조합장 동시선거가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양부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창립준비위원장은 “착한농협이란 농민 조합원이 조합을 소요하고 통제하고 이용하고 있는 조합원이 주인인 조합”이라며 “농협개혁은 누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농민 조합원이 직접 나서고 조합장부터 똑바로 뽑아 세워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도 “중앙회는 회원조합의 연합체로서 정책기능과 지도·교육기능에 충실해야 하고 일선조합도 신용사업 중심에서 벗어나 경제사업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개혁돼야 한다”며 “협동조합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려면 2015년 동시선거를 잘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협동조합 기본법 시대를 활용하자=기존 농협을 개혁하는 한편으로 협동조합 기본법도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5명만 모이면 협동조합 설립이 가능해진 기본법 시대를 맞아 농촌에서도 협동조합 설립이 붐을 이루고 있다. 완주한우협동조합, 언니네텃밭 등 농민들이 스스로 유통까지 뛰어든 생산자협동조합을 비롯해 다문화협동조합 등 농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협동조합 등 다양한 유형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졌거나 준비 중에 있다.

강민수 협동조합연구소 사무국장은 “다문화가정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협동조합을 구성하려는 움직임도 있다”며 “또 농촌 학생들을 대상으로 언어교육이 가능하고 출신국적의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을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협동조합 기본법은 기존 협동조합의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있다.

최양부 위원장은 “기본법 시대로 농림어업분야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기존 농·수협 등이 협동조합을 독점하는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경쟁시대가 열리게 됐다”면서 “기존 조합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협동조합이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두년 중원대 교수도 “협동조합 기본법을 적극 활용해 농어촌 복지분야에 대한 외부출자를 확대하고 조합이 연합 출자해 협동조합 방식으로 연합사업을 추진하거나 조합원 복지를 위한 농어촌 복지분야에 진출하는 기반으로 협동조합 기본법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농촌형 농협은 도시소비자를 끌어들여 직거래 협동조합 같은 이해관계자협동조합을 설립해 사업 활성화의 계기로 삼는 방안도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농수산분야의 협동조합도 기본법을 잘 활용해 농촌지역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농어촌협동조합으로 탈바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무현 불정농협 조합장

조합원들이 뽑아준 대의원과 이·감사들은 조합원들이 준 책임을 권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또 초선 조합장들은 농민 조합원을 위해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만 2~3선 이상 조합장들은 농협을 잘 만들겠다고 말한다. 초심이 4년 동안 바뀐 것이다.

결국 조합원들을 교육하고 그들에게 조합 경영을 투명하고 철저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조합이 갈 수 있다. 조합원이 조합원의 의무와 권리를 알도록 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도 교육이며 전 조합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교육으로부터 시작한다. 아는 만큼 바뀌기 때문이다.

상당수 조합장들의 목표는 ‘농민 조합원을 위해 어떤 일을 할까’가 아닌 오직 재선이다. 그동안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농민 조합원이 아닌 직원들이 조합을 경영했다. 농민들의 교육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다.

농민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재무제표 등도 알기 쉽게 바뀌어야 한다. 우리도 세부내역을 모두 공개한 것은 물론 조합원이 알아볼 수 있는 결산서를 만들고 있다. 농협법 정관에 농민 조합원이 알아보기 쉽게 만들라고 명시된 사항을 그대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 종종 지역에서 법과 규정, 정관에 대한 유권해석을 중앙회에 요구하지만 지역 실정마다 다른 상황에서 일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사회와 대의원총회에서 제대로 의사결정하면 된다. 예를 들어 조합 관련 자료를 공개하려면 조합원 3% 또는 300명 이상이 요구해야 가능하다. 우리 조합원이 약 1600명인데 자료 하나 보려고 많은 사람의 동의를 구해야 할까? 우리는 3%를 조합원들의 대표인 대의원의 3%도 가능하다고 해석해 대의원 3명이 동의하면 자료를 공개한다. 이처럼 이런 규정들은 길라잡이일 뿐 실정에 맞게 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합원이 주체인 농협은 지역농업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존재가치가 없다. 농업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기 때문에 지역 농업에 대한 장기계획을 세워야 한다. 우리 조합이 수도작 중심에서 콩과 감자 등 밭작물을 재배해 지금은 가격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만큼 성장한 것도 이런 부분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변화되는 환경과 농민 조합원들의 요구에 따라 농협은 변화해야 하고 이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2013/05/06 10:28 2013/05/0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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